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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투미와 함께 하는 영혼 카페 - 이름 없는 쇼 -
글쓴이 : 운영자                    (119.♡.96.249) 날짜 : 2023-02-06 (월) 14:36 조회 : 244

쿠투미와 함께 하는 영혼 카페

- 이름 없는 쇼 -

 

2019. 6. 16

 

쿠투미 랄 싱(KUTHUMI LAL SINGH)

채널: 마리사 칼비(Marisa Calvi)

 

 

마리사 칼비 : 지금 저와 함께, 우리의 공간에 들어가면서, 영혼과 함께 우리 느낌의 공간에 들어가면서 호흡합시다. 심호흡을 하고 그 순간에 있는 것은 과거는 사라지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모든 것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호흡은 우리에게 그것을 상기시킵니다. 호흡은 우리를 우리의 본질로, 우리 느낌의 공간으로 다시 데리고 갑니다. 우리의 호흡은 우리를 그 공간으로 데려가는데, 그 공간에서 마음은 느긋해지면서 창조성과 영혼의 사랑과 균형을 이룹니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식을 열게 됩니다. 즉, 우리가 끊임없이 발생시키는 패턴, 우리가 있는 곳에 계속 있게 하는 패턴에 대한 우리의 인식. 우리의 믿음들은 우리가 제한적이고 작다는 것을 계속 말해주고 있지요, 그런데 호흡은 우리가 유래한 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사랑을 느끼도록 그 모든 것을 통해 흐릅니다. 그리고 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사랑은 매 순간 스스로를 표현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자각으로, 우리의 의식적인 존재 방식을 만들어내는 인식으로 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사랑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단지 멈춰서 호흡하세요...

 

그것이 우리가 공부했던 학교들과 사원들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우리는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요. 그리고 마음은 우리에게 세상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으나 호흡은 우리가 찾고 있던 모든 것이 이미 바로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신호등이나 화장실에 앉아서도 이 호흡을 할 수 있습니다, (웃음) 사람이 가득한 공간에 있더라도 할 수 있지요. 여러분은 의식적인 호흡을 할 수 있고 그런 다음 또 한 번 그 다음에 또 한 번 호흡을 할 수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의식적인 호흡이라도 스스로에게 선물로 주는 것은 여러분이 앞으로 할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2분이라도 앉아서 그 의식적인 호흡을 되풀이 하면서 단지 영혼과 함께 그 공간에 있는 것을 즐긴다고 상상해보세요. 즉, 여러분의 진실을 느끼는 것, 여러분의 직관이나 여러분의 느낌과 새로운 방식으로 교감하는 것, 그래서 그것들이 여러분의 삶을 통해 더 깊고 더 풍부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말이죠.

 

내가 쿠투미를 들으러 가는 것도 이 공간에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 영혼에게 귀 기울이려 가는 것 역시 이 공간에 있습니다. 나에 대한 나의 헌신이 없다면, 내 영혼의 목소리, 나의 직관, 나의 본질을 느끼고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없이는, 즉 나의 아름답고 자연스런 창조성을 느끼는 것에 대한 헌신이 없다면, 나는 쿠투미를 들을 수 없었을 겁니다. 나는 그와 측면, 그리고 나의 에고 사이의 차이점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그것은 그가 맨 처음에 나에게 가르쳐 준 놀라운 것들 중 하나였지요. 이 공간에서 나는 나를 알고, 그리고 나는 그를 압니다. 그리고 나의 부분들이 말하고 있는 때를 알며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압니다. 나는 그 부분들의 이야기는 필요 없지만 나는 알고 있으며 그들의 차이점을 느낍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사람들을 이 공간으로 데려가는 것을 아주 좋아하며, 우리는 별개의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학교의 기쁨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알 수 있도록 이 공간에 익숙해지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집단의식에 얽매여 있는 작은 인간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창조하기 위해 그들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쿠투미는 항상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언제나 존재했던 가장 위대한 창조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절대적 완벽 속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주권적 경험을 창조하는 장엄한 영혼입니다. 그리고 다른 영혼보다 더 위대한 영혼은 없어요. 심지어 상승 마스터의 영혼도 그렇지 않고, 라디오 쇼를 하는 채널러의 영혼도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이 자신의 삶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든 상관없어. 여러분은 완전 완벽하게 장엄한 영혼입니다.

 

몇 번 더 깊은 호흡을 해 봅시다...

 

쿠투미와 저, 우리는 이번 라디오 프로의 주제나 컨셉이 없었기에 그가 우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쿠투미를 환영할 때 의식적인 그 호흡으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모두 합쳐 우리는 그가 우리와 공유할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창조합니다.

 

이 공간에서 몇 번 더 아름답고 부드러운 호흡을...

 

 

쿠투미 : 나마스떼

 

나, 쿠투미. 나는 많은 것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해왔지만, 그들 중 어느 것도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정의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순간에, 나의 주권적인 공간 안에서, 나의 자각 안에서 그리고 나의 선택으로, 나는 이 순간에 내가 선택하는 누구든지 되는 것에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간일 때, 우리가 이야기를 가질 때, 육체를 가지고 계획을 가지고 있을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을 때, 그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 순간 모든 영혼이 그 진리입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이 선택하는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어떤 방식이든지 될 수 있는 자유말입니다.

 

우리는 마치 그것이 우리에게 해답을 줄 것처럼 과거에서 온 이야기들을 가지고 다닙니다. 마치 영혼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돼야할지 답을 줄 것처럼 영혼을 찾으려 하지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영혼이 그럴 겁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여러분이 어떻게 창조하는지 결정하는 그것은 여러분의 의식여러분의 자각입니다.

 

영혼은 여러분이 창조하는 방법에 대한 아젠다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본질적으로 단지 순수한 창조성일 뿐이고, 단지 표현되기를 바랄 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표현되려고 하는 “호흡”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영혼은 창조의 기쁨을 위해 창조합니다. 결과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여행을 하고 있고 그것이 여러분을 다음 장소로 데려가기 때문이 아닙니다. 영혼은 단지 창조적인 에너지를 표현하는 재미를 위해 창조하기를 원합니다.

 

자, 마음과 에고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황을 완수하고 싶어 하는(일들을 성취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그 인간 부분들, (나는 그 단어를 사용할 겁니다.) 나타내 보이고 싶어 하는 그 인간 부분들. 우리는 인간 경험을 하면서 우리가 영적으로, 에너지적으로 열고 있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에 매우 사로잡힙니다. 마음은 그러한 증거를 원하지요. 마음은 우리가 안에서 느끼고 있는 것에 대한 눈에 보이는 표현을 원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그렇게 하기에 그것이 재미있지요.

 

우리는 삶의 재정적 규칙, 물리적인 삶의 실제 신체적 규칙의 경계를 밀어붙입니다. 대중 의식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하면서 가끔은 그것이 우리를 굉장히 기쁘게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죠.

 

그러나 마음이 다시 돌아와서 우리가 이것을 제대로 하고 있을 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쯤 이런 일이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지금쯤은 그런 일이 일어났어야 해라고 생각하니까요, 아니면 그것이 원래 그래야만 했던 방식대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럴 것이다(Should).”

 

그럴 것이다(Should) - 그것은 아주 강력한 말입니다. 매우 간단한 단어이지만 기대감이 겹겹이 쌓여 있지요. 그것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규칙과 시간 틀로 가득 차 있어서 정말이지 우리를 집단의식으로 다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자, 우리가 표준적인 인간의 집단의식에서 벗어나더라도, 우리는 그 다음에 영적인 여정에 얽매인 새로운 의식, 대중 의식에 자신을 밀어 넣을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세계안에 있는 영적인 세계인 거죠.

 

결코 누구도 여러분의 삶이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도록 만들지 마십시오. 그들이 그렇게 할 때 그들은 여러분의 개인적인 여정, 개인적인 표현, 개인적인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겁니다. 또한, 여러분은 다른 누군가의 규칙을 취함으로써 자신만의 것을 존중하지 않는 거죠. 아무리 그들이 의식적이고, 깨어있고, 깨달았다 하더라도 말이지요.

 

나는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삶을 사는 법을 결코 말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영혼과 함께 있으라고 그리고 영혼이 들어오게 하라고 요청할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나요? 여러분에게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 가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영혼을 삶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방법에는 잘못된 선택이 없습니다, 하나가 아닌 거죠. 단지 여러분이 에너지와 노는 것 뿐인데, 그러니 그것이 어떻게 틀릴 수 있겠습니까? 그게 어떻게 비판꺼리가 되겠습니까? 어떻게 그것이 어떤 규칙을 따르는 것이 될 수 있나요?

 

샤 자한(Shah Jahan, 무굴 제국 제5대 황제)으로서의 내 생애에서, 황제가 되기 전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을 때, 나는 아버지인 황제에게 저항했다가 망명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우리 가문의 권력기반이 자리 잡은 라자스탄 땅에 남아있었죠, 그러다 우리 지역 변두리 중 하나인 우다이푸르라고 불렸던 아름다운 도시로 이주했습니다. 우다이푸르 호수궁전은 여전히 존재하고 여러분은 거길 가 볼 수 있지요. 호수에 세워진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내 친구인 현지 왕자는 나를 그 지역에서 지내게 했습니다. 우리는 전투에서 내가 그를 패퇴시킨 사건 이후에 친구가 되었죠. 힌두교 전통의 왕자가 이슬람 전통의 왕자와 그가 거느린 가족들을 그의 집에 받아들인 것을 상상해 보세요. 우린 둘 다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어린 자식들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의 아버지가 나를 붙잡기 위해 이 궁전에 군대를 보낼지도 모른다는 끊임없는 압박감도 있었지요....

 

그래서 당시의 왕자가 나를 위해 피난처를 제안했던 거였죠. 그의 광대한 호수 안에 있는 아름다운 섬. 그곳엔 작은 궁전이 있었고 나와 나의 가족, 우리의 수행원들이 살아갈 충분한 시설이 갖춰져 있었죠, 우리는 배를 타고 이 낙원을 향해 갔습니다. 금방이라도 닥칠 듯한 위험의 위협은 사라졌고, 고기를 먹을 수 있고, (웃음) 우리가 남의 집에 폐를 끼친다는 느낌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우리의 예배를 보는 데 자유로웠죠. 이 아름다운 섬이 우리에게 건네졌습니다. 정원이 딸린 눈부시게 아름다운 작은 궁전과 물 건너의 산들을 내다보는 믿을 수 없는 경치 그리고 평온!

 

완전 낙원이었고 우리는 꽤 빨리 정착했습니다. 우리는 호수에 있는 섬 주위에서 가벼운 보트 타기를 할 수 있었죠. 원하는 만큼 큰 소리로 기도를 드릴 수도 있었고, 좋아하는 먹을 것을 키울 수도 있었죠, 마치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고 느껴졌던 모든 것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안도감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내가 창조한 반란의 에너지로부터도 떨어져 나왔다고 느꼈지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안전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안전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놀라운 아름다움과 지원을 누렸습니다. 정말이지 별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죠. 이제 그냥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아름다운 아내, 어린 자녀, 성장하고 있는 우리 가족, 우리에게 변함없는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하인들의 지지와 함께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단지 몇 주처럼 보였던 진행 사이에 일어난 일은, 의기소침이 우리 모두를 휩쓸고 지나갔다는 겁니다, 나를 제외하고 말이죠. (웃음) 그것은 내 아내와 여자들의 하렘에서 시작되었죠. 나는 곧 남자 하인들로부터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어느 날 나는 걸어 나갔고 아름다운 아내 뭄타즈는 정원을 가꾸고 있었지요. 그녀는 정원을 사랑했고, 정원을 돌보는 것은 그녀에게 아주 많은 기쁨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그녀가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사실 우려스러운 멍한 기색이 역력했지요. 그녀가 나를 보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미소를 지었고 내 걱정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어색함이 주변의 그 모든 것 안에 담겨 있음을 알아차렸지요.

 

나는 뭄타즈가 식물을 돌보는 동안 그녀 옆 풀밭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했죠, “무슨 일이야? 모두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이 곳을 봐. 우린 낙원에 있어, 안전하지. 이걸 봐. 우린 신선한 작물을 재배하고, 풍부한 물이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우리 모두가 먼지 투성이인 채로, 길 위에 계속 있는 것처럼, 언제 먹을 것이 다 떨어질지, 언제 공격을 받게 될지 염려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잖아.”

 

뭄타즈는 바로 옆에 앉아서 나를 보았지요.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아주 분명하게 말하려고 할 때 보이곤 했던 그 눈길을 보냈습니다. 흠...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항상 존중하고 예우했다는 것을 투박하지만 솔직하게 말할지도 몰라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지요, “나의 사랑하는 이여, 우리는 안전할지 몰라요, 우리는 임박한 위험요소로부터 떨어져 있을지 몰라요. 자유를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것은 아직도 새장이에요. 새장은 새장이죠.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않아요.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집에 있지 않아요. 우리는 하나의 새장을 다른 새장으로 교체했어요.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고 아름다운 환경에 감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나 우리가 남겨둔 사람들과 진정한 자유 속에서 살 수 있는 우리의 집 때문에 가슴이 아파요.”

 

“새장은 새장이죠.” 그녀가 나에게 말했지요.

 

우리가 하나의 새장에서 나와서 또 다른 하나의 새장에 우리 자신을 넣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우리는 대중 의식의 새장에서 빠져 나와 구루 또는 선생의 새장 속에 우리를 넣을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우리가 규칙과 규정을 원하기 때문에 상승 마스터도 새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비록 우리가 우중충하고 작고 보잘것없는 새장을 금과 보석으로 덮여있는 커다란 새장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제한이 있고, 경계가 있고, 규칙이 있는 새장입니다.

 

여러분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연적인 것이 아닌 한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을 거라고 말했나요? 나는 의사를 찾아가지 않을 거야. 일등석을 타고 여행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깨닫게 되지 않을 거야. 나는 여전히 과체중이어서 그러므로 나는 깨닫지 않았어. 만약 내가 깨달았다면 그때는 이런 일이 일어났을 거야.

 

보세요, 우리가 어떻게 깨달음, 의식을 가져가서 그것을 영성의 아주 반짝이는 새장 속에 넣었는지 보세요.

 

지금 나와 함께 호흡하세요. 그저 영혼을 초대하세요, 여러분이 어디에서 여전히 새장 속에 자신의 창조성을 가지고 있는지 여러분에게 보여주라고 영혼을 초대하십시오. 영혼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여러분에게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 방법에 얽매여 있을 수도 있지요.

 

깨닫게 되는 것에 대한 가장 놀라운 점은 여러분이 자신에게 선물로 주는 자유입니다. 자기 의심, 자기비판으로 다시 자유를 새장 속에 집어넣지 마세요. 자기 의심, 자기비판은 우리가 대단히 좋아하는 두 개의 멋진 새장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두 개의 새장의 토대는 일반적으로 여러분의 모든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즉 나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아직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방향지시와 해답과 지침을 주도록 요청해야 해. 왜냐하면 대개 다음 새장의 토대가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야. 자기 의심과 자기비판은 이런 거죠, 내가 이것을 제대로 하고 있나?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여러분이 선택하는 대로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정확히 있는 그대로 여러분의 삶에 계속 있으면서 그것을 하고 싶다면, 그러면 그것은 여전히 깨달음입니다. 나는 압니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 도중에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나의 경우가) 인용되고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인간 삶의 제거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웃음) 나에게 있어서, 내가 잃어버린 가장 큰 것은 의심, 자기 의심과 자기비판이었고, 그리고 새로운 규칙과 규정과 지침을 가지고 새로운 새장에 기꺼이 들어가려는 나의 마음 상태였습니다. 나는 내 창조성이 매 순간 자유롭다는 것을 알았지요.

 

처음에 창살들을 가져와서 새장을 만든 것은 나였습니다...

 

보세요, 바로 그거죠. 여러분이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거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집단의식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정확히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면서 인간이 되는 것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깨어났을 때, 우리가 이러한 인식을 열 때, 우리가 창조자임을 기억할 때, 그 새장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새장 안에 있는 것에 편안함이 있지요, 그렇지 않나요? 우리의 경계를 아는 것, 우리의 한계를 아는 것, 규칙과 규정을 아는 것, 그래서 우리는 또 다른 새장을 만듭니다. 또 다른 새장은 반짝 반짝 빛나죠. 우리는 그 새장에 앉아 집단의식의 새장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죠, ‘나의 새장이 여러분 것보다 더 좋아. (웃음) 이 새장 안에서 기분이 좋아. 나는 멋진 새 횃대(높은 자리)를 가지고 있어. 물은 항상 신선해. 씨앗(새의 모이) - 오, 그것들은 최상의 품질이고, 유기농이야.’ (더 많은 웃음)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그 새장에서 행복하다면, 그러면 바로 거기에 계속 있으세요. 하지만 철창이 없고, 횃대도 없지만 새 모이 이상의 것이 있음을 상상해 보십시오. 신선한 물, 오, 때로는 와인이죠! (웃음) 내가 창조 한 이 훌륭한 공간을 표현하는 것은 이런 거죠, ‘만일 내가 이것을 창조할 수 있다면, 내가 창조할 수 있는 또 다른 것은 뭘까?’

 

여러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창조성에 어떤 한계를 두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창조성에 대한 그런 축하의 자리에 있는 것, 즉 여러분은 전에 일어났던 일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이 지금 일어나는 일을 결정하지 않으니까요. 여러분은 앞으로 있을 일을 바라보지만 거기에는 기대감과 흥분만이 있을 뿐입니다.

 

“흥분(Excitenment)”

 

흥분 - 그건 좋은 단어입니다. 어쩌면 나는 새로운 문구로 그것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흥분은 여러분이 깨달음이 가져다 줄 것에 대해 신나서 흥분한 때이죠. 성공한 거죠! (웃음)

 

흥분 : 깨달음이 여러분에게 가져올 것에 대한 기대감과 신남, 자유롭게 창조하는, 여러분의 영혼이 가져올 것에 대한 신나함.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 창살을 뚫고 나왔으니까요. 깨달은 사람은 과거가 미래를 창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이 순간의 의식이 지금 창조합니다, 즉 미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도 창조하지 않습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죠?

호흡하고 있나요?

심장이 박동 치고 있나요?

그럼 모든 것이 괜찮아요, 여러분은 여전히 여기 있어요.

 

그리고 그것은 계속 나아가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여러분이 그 신뢰와 그 자유에게 돌아오는 것을 계속할수록, 그저 살아가기로 선택하기와 호흡하기가 가져올 것의 그 신남에 돌아오는 것을 계속할수록, 그러면 그 많은 의심과 두려움의 중압감(괴로움)은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그것에 들어서려면, 그러한 신뢰에 들어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알죠, 여러분이 그것을 할 만큼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요, 왜냐하면 여러분이 여기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스스로(영혼)에게 ‘이건 어떻게 하는 거야?’ 질문을 던지지 않을 겁니다.

 

보세요, 그건 정말 멋져요. 종종 마음에서 시작되는 그 질문, 즉 ‘우리는 그것들을 변형시킬 수 있어. 우리는 새로운 계기로 그것들을 변형시킬 수 있어.’

 

이건 어떻게 보이나요?

내가 선택하는 대로.

 

그것이 일어날까?

글쎄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러나 뭔가가 완전 완벽하게 일어날 거야.

 

내가 그것을 보려고 살아갈까?

물론 그럴 거야, 당연히 여러분은 그럴 거야.

 

지금 나와 함께 호흡하세요.

 

여러분은 어떤 새장에 머물기를 원하십니까, 나는 그 새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상관하지 않지만, 그 새장이 무엇인지는 여러분의 선택이 되게 하십시오. 그 안에 있는 것을 선택하세요,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보일지를 선택하십시오, 비록 그것이 실제로 창살을 세운 한계를 자신에게 알게 만드는 것일지라도 말이지요. 그러나 그 한계가 삶과의 연결에서 여러분을 저지하게 하지는 마십시오.

 

만일 여러분의 몸이 균형을 벗어났다면, 혼자 균형을 맞추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료계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의료계를 만든 것입니다. 우리를 지원하고 돌보게 하기 위해 의료계를 만들었지요. 의료계에 의지해도 괜찮습니다.

 

결과를 위해 실제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우리는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 영혼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져오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삶과 상호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계를 창조한 이유니까요. 이 세계를 가지고 놀기 위해, 이 세계와 상호작용 하기 위해 창조한 거니까요. 인간의 현실에서 실현되고 창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요정들, 마술사처럼 손가락을 탁 튕기면서 그것이 일어나도록 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세요, 우리는 연금술을 가지고 놀 때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물리적인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싶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 돌멩이를 가져다가 금이 되게 하는 거요. 보석을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꾸는 것, 다이아몬드를 사파이어로, 루비로, 에메랄드로 바꾸기.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것 안에 있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우리 창조성의 일시적 기분(문득 떠오른 착상)에 달려있다는 것을 우리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 가서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지루해 할 겁니다. 여러분은 이미 그런 일을 마쳤습니다.

 

재미는 이제 여러분의 기쁨과 함께 존재하는 거죠.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의 우아함(품위)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 여러분이 이 모든 에너지를 가지고 어떻게 놀지를 선택한다는 그러한 인식으로 매 순간 삶을 통과해 나가는 것.

 

우리는 아틀란티아 시대에 과학을 창조했지요, 그 이유는 우리 주변의 것들을 이해하고 싶었고, 우리가 그것들의 물리적인 역학을 이해하기를 원했고, 인간의 지식의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놀라운 것은 과학이 더 많이 탐구할수록 탐구할 더 많은 것을 발견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마음이 설명할 수 없는 이 물리적 현실에서 모든 것을 깨끗이 하는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는지도 말이지요. 하지만 열린 지식, 열린 인식, 그리고 열린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의 진실을 느끼고 그 모든 것 안에서 창조적인 역동성을 느낍니다.

 

원자를 예로 보세요.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함께 춤추는 원자들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지요. 그리고 그것 자체로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이 물리적 현실 속의 모든 것은 함께 춤추는 원자들인 거죠.

 

그리고 나서 우리의 과학적 지식은 확장되었고, 우리는 원자 안에 전자, 양성자, 중성자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들 모두가 독특한 원자를 만들기 위해 서로 춤을 춥니다. 그리고 바깥쪽에서 주위를 신나게 돌고 있는 작은 전자들은 때때로 서로 상호작용하고 함께 합쳐지는 다른 원자들과 놉니다, 그러면 상호작용하는 어떤 것으로 그들 자신을 배열하는 분자들을 만들어내는 거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의 토대에서, 알다시피, 과학자들은 여전히 전자,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다른 것들도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내거나 이해하는 중 일뿐이죠. 원자의 그 작은 부분들 안에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현실로 나타내 보이기 위해 함께 춤추며 놀고 있는 에너지임을 부인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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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주위를 둘러본다고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 옆에 있는 램프, 그것은 여러분에게 빛을 주기 위해 램프 형태가 되려고 모두 함께 춤을 추는 에너지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침대, 여러분이 쉴 수 있도록 매트리스, 시트, 베개를 만들기 위해 함께 춤을 추는 온갖 아름다운 에너지이죠. 모든 것을 상상해 보세요, 심지어 먹는 음식까지도: 여러분에게 자양분을 주기 위해 무언가를 창조하려고 함께 춤추는 에너지이며, 그리고 여러분은 그것을 취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몸, 여러분 몸의 바로 그 본질은 여러분이 삶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형태를 만들려고 함께 춤추면서 노는 에너지입니다.

 

우리가 삶을 그 단순함으로 되돌릴 때, 물리적인 존재, 우리 존재의 물리적인 현실로 돌아갈 때, 그것은 단지 함께 춤추고 놀고 있는 에너지일 뿐이며 나 역시도 그렇습니다, 상호작용하면서 노는 것이죠. 밀어붙이거나 통제할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이해할 것도 아니죠. 그저 가지고 놀 에너지일 뿐이죠. 삶이란 바로 그런 거죠, 삶의 바로 그 본질그저 경험을 창조하려고 놀면서 춤추고 있는 에너지. 하지만 그것은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죠, 그렇지 않은가요?

 

과거에 우리는 그 어떤 의미(목적)를 부여하고 싶어 했죠. 우리는 그것을 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나, 여러분은 그 신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서 이 세계를 둘러보았죠, 그리고 우리는 함께 놀면서 춤추고 있는 이 모든 물질적인 에너지 뒤에 있는 이 동인(動因, 흐름)에 대한 그 아름다운 관련성(연결)을 가져왔던 거죠. 그리고 우리는 그것(신의 에너지)에게 이야기를 주었고, 그것에게 두려움을 주었고, 그것에게 의무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신의 에너지는, 결코 의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결코 죄를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경험을 가지고 놀기를 원했을 뿐입니다.

 

여러분의 새로운 이야기로서 그것을 상상해보십시오.

 

나는 내 영혼의 자각에 이끌려서

내가 경험을 창조하는 것을 가지고 놀고 있는 에너지이다.

나의 영혼과 함께, 나는 이 에너지들이 어떻게 춤추는지 선택한다,

이 에너지들이 창조하는 것을,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선택한다.

 

우리가 그 단순함으로 다시 돌아가면, 전에는 몰랐던 기쁨의 감각을 열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외부 세상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거나 우리가 행복과 흥분을 느끼도록 외부 세상이 무언가를 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내면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어떻게 내 주변 세상을 보려고 선택하고 있나?

나의 경험을 창조하기 위해서

이 모든 에너지와 어떻게 춤추려고 선택하고 있나?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사랑의 감각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기쁨의 감각에서부터.

 

어떤 이야기에서도 자유로워지세요.

어떤 새장에서도 자유로워지세요.

 

자유로운 창조자가 되려는 소망이 바로 우리의 동인(動因)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가져올지, 펼쳐낼지, 드러내 보일지에 대해서 어떻게 흥분(신나)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을 신뢰하는 것, 그리고 그것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

 

매 순간마다 영혼이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선택하는 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여전히 새장 안에 자신을 가둬두고 있는가? 입니다. 우리의 한계와 신념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서 그 즐겁고, 몹시 유쾌한 순수한 장난기를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의 이 모든 에너지가 우리보다 더 크다고(강하다고) 우리를 설득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아름다운 에너지가 우리의 것이니까요.

그건 전부 우리의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대로 노는 것에 자유롭습니다.

 

 

나마스떼

 

http://newenergywrit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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