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報恩)
은혜(恩惠)를 저버리지 말라
은혜라 함은 남이 나에게 베풀어주는 혜택이요,
저버림이라 함은 잊고 배반함이니,
은혜를 받거든 반드시 갚아야 한다.
생(生)과 수명과 복록은 천지의 은혜이니
성ㆍ경ㆍ신으로써 천지 보은의 대의(大義)를 세워
인도(人道)를 다하고,
보명(保命)과 안주(安住)는 국가 사회의 은혜이니
헌신 봉사의 충성(忠誠)으로써
사회발전과 공동복리를 도모하며
국민의 도리(道理)를 다하고,
출생과 양육은 부모의 은혜이니
숭선(崇先) 보본(報本)의 대의(大義)로
효도(孝道)를 다하고,
교도(敎導) 육성(育成)은 스승의 은혜이니
봉교(奉敎) 포덕(布德)으로써 제도(弟道)를 다하고,
생활과 녹작(祿爵)은 직업의 은혜이니
충실(忠實)과 근면(勤勉)으로써 직분(職分)을 다하라.
[상제님]
복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오.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것이 아니니 사람의 도의로서
부모를 잘 공양하라. (교법 1장 41절)
선천에서는 상극지리가 인간과 사물을 지배하였으므로
도수가 그릇되어 제자가 선생을 해하는 하극상(下克上)의
일이 있었으나 이후로는 강륜(綱倫)이 나타나게 되므로
그런 불의를 감행하지 못할 것이니라. 그런 짓을 감행하는
자에게 배사률(背師律)의 벌이 있으리라. (교법 3장 34절)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이나니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60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 만한 자손 하나를 타 내되 그렇게 공을 들여도
자손 하나를 얻지 못하는 선령신들도 많으니라.
이같이 공을 들여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 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게 보내리오”
(교법 2장 36절)
광찬이 “선령신을 섬길 줄 모르는 자는
살지 못하리이다”고 여쭈니
상제께서 말씀이 없으시다가 잠시 후에
“네 말이 가하다” 하시고… (공사 3장 9절)
조선과 같이 신명을 잘 대접하는 곳이 이 세상에 없도다.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고자 제각기 소원에 따라
부족함이 없이 받들어 줄 것이므로 도인들은 천하사에만
아무 거리낌 없이 종사하게 되리라. (교법 3장 22절)
[도주님]
도인으로서 대인수행의 지상과제(至上課題)는
보은과 적덕(積德)이니
은혜를 저버리지 말아야 하며
남을 잘되게 하여야 하느니라.
1922년 추석 며칠 전에 상우에게 하명하시기를
“지난 정월에 내가 대전으로 갈 때 후대하여 준
산중의 노부부를 찾아가서 은공을 사례하라.” 하시며
그 위치를 자세히 하교하시므로 찾아갔으나
그곳에는 집도 노부부도 없으니라.
헛걸음하고 돌아와서 결과를 보고하니 미소하시며
“그 일은 마음으로 전하였으니 그로써 되었느니라.
다만 너희는 삼재(三才) 오행(五行) 우주 만물의
무한한 은덕 속에 사는 고마움을 알고
보은(報恩)을 명심하라.” 하시니라.
사람의 생업 가운데 농업을
‘천하의 대본이라’함에는 큰 뜻이 있느니라.
곡식 종자를 심고ㆍ가꾸고ㆍ거두는 일은
인간이 하고 땅은 지기로써 생장(生長)시키며,
하늘은 우로(雨露)를 내리고 태양으로 결실시키느니
이와 같이 천덕(天德)ㆍ지덕(地德)ㆍ인덕(人德)의
3덕이 합덕하여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농업은 금전 수입만을 위한 업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보전하는 생업(生業) 중 모업(母業)이니라.
근자에 많은 기계가 발명되어 농작이 용이한 데
이도 다 인간계를 감호(監護)하시는
구천의 공사소치(公事所致)니라.
상업을 크게 하면 실업가라 하고, 작게 하면
상인이라 하지마는 이 사람들이 있어야 중생의 현실생활이
유지되는 것이니 그 공덕이 크니라. 그러나 수요자에게
좋은 생활품을 제공한 그 보은으로 생활하는 것을
감사하지 않고 불량품을 고가로 폭리를 취하는 자는
실로 상인이 아닌 도인(盜人)이니라.
사회에 대한 감사의 봉사심으로 하면 좋은 평판을 얻어
그 사업이 일익번창할 것이니 이 또한 합덕, 조화니라.
상업자가 만일 불량품으로 폭리를 취하면 그 물품에
척이 붙어 상인과 수요자 간에 원이 생기느니
설사 원척을 쌓아서 치부(致富)를 하였다 하여도
신명이 오래 유지하지 못하게 하리라. 그러므로
밥장수의 반 숟갈 인심과 술장수의 몇 방울 후덕도
쌓이면 산하와 같은 복이 되느니라.
다시 말하거니와 신명계에서도
수도 공부는 계속하여야 하느니
수도한 신명은 향상(向上)하되,
원척을 풀지 못하고 악업(惡業)을
자행하는 신은 더욱 하락하므로
생전에 대도를 믿고 닦은 상대신명(上臺神明)의 영화와
죄얼(罪孼)이 많은 척신의 재앙과 고생은
언어나 문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사후 신명계의 복락은
생전에 상제님을 숭신(崇信)하고 국가에 충성하며
조상에의 봉사와 부모에의 효행을 힘쓰고
형제와 일가친척, 이웃과 우애하며
사회를 위한 일에 성경신을 다함으로써 얻으리라.
불신 불충 불효 불성 불경하여 살도(殺盜) 음탐으로
삶을 마친 자의 사후 참혹상은
인계의 생활로는 비교할 수 없이 처절하니라.
[도전님]
우리는 상제님의 가르침대로 원을 짓지 말고
지은보은(知恩報恩)의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종단의 특징은 실천 도덕에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람을 높여주고 상극하지 않으며,
서로 상생하고 협동하며, 품었던 원을 풀게 하고,
은혜를 입었으면 보은하도록 해야 합니다.
상제께서는 공을 들여 어렵게 태어난 인생을
헛되게 보낼까 걱정하시어
잠시도 쉬지 말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1983. 7. 25)
생(生)과 수명과 복록은 천지의 대은(大恩)이니
성(誠)ㆍ경(敬)ㆍ신(信)으로써 하느님께 보답해야 하고,
존재ㆍ지위ㆍ가치가 유지되는 것은 사회의 대은이니
사회 공동 복지를 위하여 헌신 봉사하고,
강녕(康寧)과 번영은 국가의 대은이니
성충(誠忠)을 다하여 헌신 봉공하고,
생장 양육은 부모의 대은이니
효성(孝誠)으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고,
교양 육성은 스승의 대은이니
익혀 받은 학식으로 국가 사회발전에 헌신 봉사하고,
생활의 풍성(豊盛)은 직업의 대은이니
충실 근면으로 직무에 전력하여야 하겠습니다. (1984. 6. 15)
사람은 출생으로부터 은의(恩誼) 어린 사회를 떠나서
삶을 하루라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자신이 이와 같은 삶의 근원을 깨닫고 삶의 원천을 살피어
그러한 은혜를 헤아려 감사해야 하고,
보답하는 것이 바로 보은상생의 정신이며 윤리입니다.
(1985. 7. 27)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먼저 척을 짓지 아니하는 데 마음을 쏟는 것이다.
남을 정면 또는 후면에서 헐뜯어서 중상하고
모략⋅음해 등으로 척을 맺어놓고 풀지 않았으면
사후(死後)에 그 보가(報價)를 받게 되는데
이는 척이 독약과 같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덕을 행하여 나가면
자애와 은혜가 베풀어지나니
은혜를 베푸는 데서 사람이 따르고
모이는 이치를 깨달아라.
첫째, 사람과의 사귐에 상대를 알고
나의 도리부터 먼저 바로 할 뿐이요
탓하는 버릇을 없이 하고,
지기지우(知己之友)가 되지 못하더라도
너그럽게 대하며 폭 잡히는 일을 하지 말며
반성의 여지가 없는 경우라면 충고도 삼가야 한다.
미봉책을 잘 쓰는 사람은
기연이불연성(其然而不然性, 변덕이 심한 성질)이
강하므로 고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인접물(對人接物)에 항상 유의하여
베풀 수 있는 길을 먼저 찾도록 노력해 나가라.
둘째, 사람의 생활은 집단생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집단생활이란 통솔의 법칙이 서야 하나니
이 법칙이 상봉하솔(上奉下率)의 천연적(天然的) 체계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였으니
인간의 대본(大本)은 진실의 성(誠)일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라 하셨으니,
위가 진실하면 덕을 베푸는 길이 열리고
아래가 진실하면 은혜를 갚는 길이 열리니
이 일이 곧 은혜를 서로 베푸는 일이다.
상봉하솔의 질서가 서고서야
화합 단결이 무위이화(無爲而化)로 되나니
수도하는 도인 또한
우리 도의 포덕천하의 진리가
멀고 먼 데서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닦는 상봉하솔의 대순진리의
수도에 있음을 알아두라. (1986. 9. 28)
윗임원은 아래 임원을 아끼고 친절히 대해주고,
아래 임원은 윗임원을 존경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화목이다.
선⋅교감은 아래 임원에게 감사의 마음,
아래는 위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질 인(仁) 자는 부처가 아니고 우리 도인에게 있다.
인(仁) 자는 바로 친절이다.
마음이 바로 서면 밉고 고움이 없어진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야 도통진경이다.
친절히 대할 때 포덕이 되는 것이다. (1987. 3. 10)
부모의 자식에 대한 자애심보다 더한 것이 도인의 마음이다.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아기를 업었을 때도
괴로움을 모르는 것이 해원상생이다. (1987. 7. 23)
상호 간에 통심정(通心情)의 자모지정(慈母之情)으로
수반 도인들을 대하여야 합니다.
항상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될 때
비로소 은의(恩義)를 저버리지 않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1988. 3. 27)
도인 상호 간에 은의(恩義)로써
임원은 항상 반성하여 기거동작을 바르게 하며,
수반은 보은하는 마음으로 믿고 따르며
적중한 예를 갖출 줄 아는 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1988. 10. 10)
항상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해원상생ㆍ보은상생의 길입니다.
(1989. 1. 7)
서로 믿는 데 있어서 고마움⋅감사함을 느껴야 한다.
(1989. 1. 8)
상대방이 자꾸 고맙다는 생각이 나도록,
또 나 스스로 무조건 고맙다고 생각하도록 하라.
그러면 감사한 것이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다.
(1989. 1. 12)
고마운 생각을 가지면 된다. 그러면 감사하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1989. 2. 10)
서로가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서로가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1989. 3. 18)
함께 살아가는 데 서로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니
서로가 고맙다는 것을 잘 알면
화합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면 오해가 있기 마련이다.
척을 풀어나가는 것,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1989. 4. 12)
상하 간에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마음이다.
이것이 아니면 도통을 받지 못한다. (1990. 1. 30)
서로의 힘과 뜻을 합쳐야 비로소 일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니,
도인들은 서로 간에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1990. 2. 10)
평도인은 자기에게 운수를 전해준 사람을 고맙게 생각하고,
임원은 그 사람들이 있으니까 자기가 그 자리에
있게 되었음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그게 단결이고, 한마음 한뜻이 되는 길이다. (1991. 1. 20)
미운 게 없고 원망이 없으면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그저 서로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해나가야 한다.
남이 나에게 잘해주고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잘해주고 이해해줘야 한다. (1991. 4. 20)
하늘과 땅이 있어서 ‘나’라는 존재가 있고,
나라가 있어서 ‘나’라는 존재가 있고, 부모가 있어서
‘나’라는 존재가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나’라는 존재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없다. ‘나’라는 존재가
있으므로 해서 앞으로 도통도 있다.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보면 모두가 고맙고 감사하다.
싫은 게 아무것도 없다. (1991. 5. 14)
저 밑의 평도인을 보면 고맙고 감사한 것이다.
평도인들도 임원을 보면
‘내가 운수를 받도록 이끌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1992. 12. 28)
고맙고 감사하다는 걸 생활화하라!
이것이 해원상생의 길이다. (1991. 5. 14)
해원상생이다.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되고,
상생이 되어야 해원이 된다.
이것은 다른 게 아니라
서로 감사하다는 그 마음을 가지면 된다. (1993. 1. 28)
너와 내가 척이 없이 서로 돕고 존경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방면 체내(體內)가 편안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사회 국가가 안정되고 천하가 화평하게 됩니다.
이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입니다. (1993. 2. 4)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공경해야 한다.
서로가 감사해야 한다.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 서로가 은혜를 입고 간다.
임원이라도 후각이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아랫사람도 윗임원이 있기 때문에 이 도를 알게 된 것이니
서로 감사해야 한다. (1993. 5. 28)
사람이 제일 중한 것이다.
상제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사람이 제일 필요하다.
공이 크고 적은 게 거기에 있다. (1994. 6. 10)
우리 도는 해원상생의 대도(大道)이다.
모든 것을 서로가 이해하고,
서로가 존경하고,
서로가 늘 감사하다는 마음을 잊지 않고 가져야 된다.
(1994.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