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
[상제님]
우리의 일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라.
남이 잘 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되나니
전 명숙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인(賤人)을 귀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 되어 조선 명부가 되었느니라. (교법 1장 2절)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의 운로를 열어서
선천에서의 상극에 따른 모든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道)로써 세계의 창생을 건지려는 상제의 뜻은
이미 세상에 홍포된 바이니라. (예시 6절)
선천에서는 판이 좁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 도(道)만을 따로 써서
난국을 능히 바로잡을 수 있었으나
후천에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도법을 합(合)하여 쓰지 않고는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리라. (예시 13절)
나의 일이 장차 초장봉기(楚將蜂起)와 같이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나되
다시 진법이 나오게 되리라. (교운 1장 42절)
[도주님]
도주께서 통사동(通士洞) 재실에서 어느 날
“오도자 금불문 고불문지도야
(吾道者今不聞古不聞之道也)라 믿고 닦기가 어려우니라”
하시고 다시 추종하는 여러 사람들을 앞에 모으고
무극대운(无極大運)의 해원상생 대도(解冤相生大道)의
진리를 설법하시어 도(道)를 밝혀 주셨도다. (교운 2장 18절)
도(道)란
무극의 정(定)과 태극의 동(動)으로
양의가 생하고
양의에서 사상이 생하며
사상에서 팔괘가 생하는
우주 생성발전의 본체니라.
그 생(生)이라 함은
다른 물상이나 사상(事象)이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무극이 곧 태극이며,
태극이 곧 음양이며,
사상이며, 오행이며, 팔괘니
이것이 태극의 진리니라.
업은 아이 3년 찾는다는
속담이 있느니
도인들은 이 말을 명심하라.
우주의 대도인 태극의 진리가
멀리 있는 것으로 알기 쉬우나,
사람의 일상생활 가운데 함께 있으니
업고 있고, 안고 있고,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이
막비도(莫非道)니라.
누구라도 도를 눈으로 보고
믿지는 못할 것이요,
다만 진법도리를 깨달아 믿는 것이니라.
소경이 꽃을 보지는 못하여도
향기를 맡고 알듯
도는 보는 것이 아니라,
심공(心工)으로써 깨닫는 것이므로
심불재도(心不在道)라,
도재심공(道在心工)이니라.
나의 도는 구천상제님의 공사에 따르는
천지인 삼계의 대도니라.
어느 한 사람의 복이나 빌고
선(善)이나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전 인류와 신명을 광구하여
함께 후천복록(後天福祿)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신
상제님의 도수로 진행되는 도이므로
오도는 남 잘 되게 하는 공부니라.
나의 도는 삼계의 대도라, 세계 어느 종교든지
모두 무극과 태극의 본원에서 흘러나온 지류(支流)이니,
유교, 불교, 서교 또 다른 지류의 교인들을 탓할 것은
없느니라. 그들이 어느 지방신이나 문명신을 믿는 것도
틀린 일은 아니나 지방 방백에게 하는 충성보다
군주에게 하는 충성이 가장 으뜸임을 모름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태극의 진주와 함께
도의 본원을 믿고 있으니
가히 진복자(眞福者)니라.
다른 종교에서는 대개 마음만 말하고
몸을 말하 지 않지마는
오도는 몸 또한 마음과 같이
중히 여기는 바니 내가 일찍이
"몸은 마음의 표현이라" 함이 이것이니라.
네가 묻는 이상과 현실도 마찬가지니
모든 것이 독음 독양(獨陰獨陽)으로는
이룰 수 없음이니라.
마음과 몸, 이상과 현실은
실로 둘이면 서 둘이 아니니
무극이 곧 태극임을 아는 자는
이 음양합덕의 진리가
눈에 보이듯 알아지리라.
심령신대(心靈神臺)를 수양하되
신체발부를 법례에 맞게 하고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에도 충실하여야 하리니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도인이 아니니라.
대저 도라는 것은 마음의 길에 앞서
눈에 보이는 철길이나 신작로가 바로 그것이니
마음의 길이나 몸이 길, 이상과 현실 의 길이
모두 하나의 도에서 나온 두 길이니라.
그러므로 음양합덕은 심신합덕(心身合德)에 있고
신인조화는 심신조화(心身調化)에 있느니라.
너희들이 나를 보고,
나의 도를 알고,
나의 법방으로 닦음은
실로 다행한 일이나,
후세에 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 도인들의 신심은
더욱 지극하여야 하리라.
나의 인신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너희와 길이 함께 있으며
또한 도와 함께 있으니
도인의 심령신대(心靈神臺) 가운데
나도 항상 함께 하고
도(道)도 함께 함이니라.
증산상제님께서
"내가 너희 앞에 있은들 알며
뒤에 있은 들 알랴?" 하심은
곧 나의 일이니라.
[도전님]
도(道)가 음양이며
음양이 이치이며,
이치가 곧 경위이며
경위가 법이라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대순지침>
인류의 평화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인보상조(隣保相助)의 미덕으로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도의 무한대한 진리에
있음을 이해하라. <대순지침>
우리의 종지⋅신조⋅목적을 뚜렷이
모르는 데서 허황된 말이 나온다.
임원들이 우리의 종지⋅신조⋅목적을 충분히 알고
가르쳤다면 그런 말이 안 나온다.
우리 도는 구천상제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고,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을 종지로 삼고,
안심⋅안신⋅경천⋅수도의 사강령과
성경신 삼요체를 신조로 하여
종통을 계승하신 도주님께서 창도하신 것이다.
종지는 일체 믿고, 행하고, 나중에 받게 되는 것에 대해
가장 중요한 요점만 간단히 말씀해 놓으신 것이며,
신조는 신앙해 나가는 데 있어서의 조항이고,
목적은 목표로 정하고 나아가는 것으로
무자기-정신개벽,
지상신선 실현-인간개조,
지상천국 건설-세계개벽인데,
인간개조⋅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구제창생⋅보국안민⋅지상천국 건설을
이룩하는 것이다.
도주님께서는 훈회와 도인의 수칙을 엄수하고
정심(正心)으로 수도하며 윤리도덕을 기본으로
삼으라고 명하셨다. 이것을 다 알면
가정불화가 일어날 수 없다.
가정화합으로 상도(常道)를 순행(順行)하여야
보은상생⋅해원상생으로 도통진경에 이르는
상생대도의 대순진리 수행이 된다. (1984. 4. 30)
우리 도인들이 상제님의 대순하신 유의(遺意)를
숭신(崇信)하여 귀의할 바를
모든 사람에게 널리 알려
해원상생 대도(大道)에 동귀(同歸)하도록
힘을 다하는 일이 포덕사업이다. (1985. 3. 16)
도(道)란 신성⋅불⋅보살의 하소연에 의해
상제님께서 삼계대권을 가지시고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사람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오셔서
진멸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구하시려고
천지공사를 행하셨으며,
그 행하신 바를 계시(啓示)로
도주님께 전하신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1986. 10. 28)
소가 도(道)다.
소는 청림(靑林)이고 12월이다.
소에 관한 모든 비결은
청(靑) 자 하나로 돌아간다.
이 우주 안에
우리 도가 아닌 것이 없다.
(1987. 4. 27)
도인을 만드는 데 있어서는
알게 하는 것보다
지키고 행하게 하는 것이라야 한다.
속이는 것은 안 된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것이다.
행하여야 할 도리가 도덕이다.
사람이 온전히 갖추어지면
욕심도 사심도 없다.
원 천성(天性)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도통을 받는다.
이것이 그릇이다.
유리알같이 깨끗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운수는 저절로 받는다.
(1988. 2. 29)
<전경>의 원 강령은
삼강오륜의 충효열이다.
제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 되고,
올바른 일을 가르치고,
올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을 도인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마음만 거슬려도 척이 된다.
그래서 척을 푸는 것을
우리 수도의 제일로 삼아야 한다.
그릇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취해서 고쳐나가야 한다.
(1989. 2. 12)
대화로써
이해하고 풀어 나가는 것이
도의 일이며
해원상생의 원리인 것이고
우리의 원 근본이다. (1990. 3. 4)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고
윤리도덕을 숭상하는 데서
정신만 통일된다면 그것이 도통이다.
내가 수도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마음과 정신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수도라는 게 주문 읽고 그러는 것만이 아니다.
여러 사람의 잘된 것을 받아들이고
못된 것을 버리고 해서 배우는 그런 것이다.
도를 닦는다는 것이 다른 게 아니다. 쉽다.
내가 옳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옳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하면 되는 것이다.
도통이라는 것은 잘 닦아야 오는 것이다.
인륜도덕은 우리 수도과정에 있어서 기본 원리이다
사람으로서 꼭 지키고 행하여야 할 일을
내가 움직이고 철저히 행하는 것이 수도다.
(1991. 12. 5)
가정화목이 수도의 근본이다.
전부 한 몸뚱이에서 이루어진 것이 가정이다.
가정화합이 안 되면
운수를 못 받고 도통을 못 받는다.
그렇다면 못할 게 없다.
어려울 게 없다.
내 할 일을 다 하고,
자식으로 지켜야 할 도리만 다하면 된다.
밑의 사람이나 윗사람이나
내외간도 마찬가지다. (1992. 2. 8)
우리는 진리다.
진리를 잘 이해시키고
진리로 잘 이끌어 나가야 한다.
원래 실(實)이 나오기 전에
허(虛)가 먼저 동한다고 했다.
별것이 다 나온다.
그런 것에 현혹되지 않도록 하라.
이번에는 천지신명을 모신 데가
우리 도장이고 사람에게 봉한다.
도장에 있는 신명하고
밖에 있는 잡신하고 완전히 다르다.
공부 기운을 받는 데는
멀고 가까운 것이 상관없다.
도인이면 기운을 똑같이 받는다.
무엇보다 우리 도의 진리를 이해시키고
도인들이 그것을 확고하게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1992. 3. 18)
도를 믿는다면
도의 근본을 지켜야 한다.
그것을 못 지키면
앞으로의 성공이 있을 수 없다.
우리 도의 근본이 해원상생이니,
해원상생의 원리로 생활해야 한다.
해원상생을 받들어서 신앙해 나가야 한다.
이것을 꼭 지켜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이 원리로 해나가고,
이 원리로 가정과 이웃⋅사회에서 생활해야 한다.
우리가 어느 곳에 가더라도
신뢰하고 상대방에게 먼저 잘하면 조용하다.
내가 해롭게 하지 않고
먼저 잘하면 자연히 화합이 된다.
성⋅경⋅신, 이것을
마음⋅몸⋅처사에 실천하게 하라.
모든 것이 무자기를 근본으로 해야 이루어진다.
(1992. 5. 3)
내가 해롭게 하지 않고
먼저 잘하면 자연히 화합이 된다.
이것이 우리 도의 근본이고
해원상생이다.
가정이 화목해야 하고
이웃끼리 화합해야 하고
사회가 화평해야 한다. (1992. 5. 3)
“신목여전(神目如電)하니
암실기심(暗室欺心)하지 말라.”고 했다.
사정(邪正)의 감정(鑑定)을
번갯불에 붙인다고 하셨는데,
신명의 눈은 번갯불보다 더 빠르다.
우리 도는 신도이다.
신이 심판을 하고,
신으로부터 운수를 받고 도통을 받는다.
신의 눈은 번갯불과 같다고 했는데
나는 번갯불보다 빠르다고 했다.
믿는 자에게는 가고,
안 믿는 자에게는 안 간다.
믿는 자는 받고
안 믿는 자는 못 받는다. (1992. 5. 31)
의통이 신안(神眼)이다.
공부하는 사람이 직접 신안이 열리고
신안에만 마주쳤다 하면 풀린다.
모든 것이 풀려진다.
여기서 공부하고 있는데
멀고 가까움이 없이 다 된다.
영(靈)은 멀고 가까움이 없다.
(1992. 6. 26)
우리 도는 상생대도(相生大道)입니다.
상생(相生)은 조화(調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느 하나가 잘못되면 조화를 잃게 됩니다.
예를 들면 단청을 함에 있어 열두 가지 색이 서로
조화를 잘 이룰 때 다채롭고 우아하게 보일 것입니다.
만일 어느 한 색이라도 튀어나와 보이면
다른 색들은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수도에 있어서도 이와 같아서
체계 내에서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임원은 아래 사람을 애휼지도(愛恤指導)하고
아래 수반은 임원을 경례(敬禮)로써 섬기면
척이 없이 잘 닦게 되는 것입니다. (1993. 2. 4)
도(道)는 대순(大巡)이다.
대순(大巡)은 원(圓)이고,
원은 무극(無極)이고,
무극이 태극(太極)이다.
천지의 모든 이치, 진리는
다 이 안에 들어있다.
우리가 통한다고 하는 것은
그 진리에 통하는 것이다.
석가는 앉아있으니
태아고 어린애이다.
앞으로는 미륵이다.
기독교에서는 불로 심판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신명 심판이라고 한다.
미륵은 서 있으니 어른이다.
오로지 정신통일이다.
마음이 거울처럼 맑으면 통한다.
기독교는 사랑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서로 존경하라는 것이다.
해원상생은 서로가 아무 원망이 없이
서로 존경해 나가는 것이다. (1993. 4. 27)
도인으로서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
마음, 영(靈)이다.
정성이란 도인으로서
마음과 영,
심령(心靈)을 통일하는 것이다.
도가 곧 나요,
내가 바로 도라는 경지에서
마음과 영,
심령을 통일하는 것이다.
정성은 마음으로 하는 것인데,
그 목적은 영을 통하는 것이다.
심령(心靈)을 통일시키는 데
마음을 다해야 한다. (1993. 7. 11)
우리는 항상 서로가 돕고 이해하고
같이 융화 단결해야 한다.
그것이 해원상생 대도의 근본이 된다.
말보다도 실천에 옮기고 항상 생활화해 나가야 한다.
어렵다. 어렵다면 참으로 어렵고,
쉽다면 참으로 쉬운 것이다. (1993. 11. 4)
우리 도는 해원상생의 대도(大道)이다.
우리의 목적은 도통, 즉 도통진경이다.
수도가 없이는
도통의 경지에 못 가고, 도통도 없다.
성경신 삼법언으로
우리가 수도하는 데 요체로 삼고,
또 안심⋅안신을 법으로 삼아
대순진리를 닦고 또 닦고,
정성하고 또 정성하면 그것이 수도다.
이렇게 해나가면 영(靈)이 통하고
영통(靈通)이 곧 도통(道通)이다.
(1994. 8. 4)
해원상생은 서로 이해하고 돕고,
무엇보다도 가정화목, 이웃화합, 사회화평,
온 세계를 평화스럽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1994.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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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후무한 진리의 도(道)로
화민정세(化民靖世)하시고자 하신
상제님의 ‘대도의 참뜻’을
도주님께서는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의
‘종지’로 밝혀주셨고,
도전님께서는 이 종지를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
즉 ‘대순진리’라 규정하셨다.
이것은 상제님의 유지(遺志)가
도주님의 유법(遺法)으로 계승되고,
도주님의 유법(遺法)은 다시
도전님의 유훈(遺訓)으로 계승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순회보> 178호, 청계탑, 대도(大道)의 참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