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儒)ㆍ불(佛)ㆍ선(仙)
누구나 자신이 과오를 저지르면 자포자기하는 데서 탈선이 된다. 신명 공판은 운수받는 자리에서 있는 것이 아니고 수도 과정에서 있는 것이다. 신명이 각자의 닦은 바를 뜨름질하여 운수자리를 정한다. 허화 난동을 조심하라. 난법을 저지르면 자신도 모르게 도(道)가 멀어진다. 사람이 도(道)를 버리지, 도(道)가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참뜻을 각자가 깨달아야 한다.
앞으로 도인들이 속았다, 헛 닦았다 하는 말들이 나올 때가 있다. 유교에 72 현인과 불교에 500나한의 고역을 생각하여 보아라. 참다운 성심(誠心)에서 일심(一心)이 나올 때 비로소 삶이 있다. 마음 지키기가 죽기보다 어려우니 따라오는 힘이 크니라. (1980. 2. 18)
논산 관촉사 미륵불을 볼 때 상반신은 연산(連山) 우두산(牛頭山)의 석재를 사용한 것이며, 또한 심우도(尋牛圖)를 불교에서는 수도자의 진로를 표시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실은 도를 찾으라는 뜻을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니라.
상제님의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도주님이 계승한다는 종통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金山寺)로 오라.” 하신 것은 미륵불과 솥의 양산도(兩山道) 진리를 밝혀 주심인데, 각 교파들이 금산사의 미륵불 신봉에만 관심을 모으고 미륵불을 받들고 있는 솥의 진리를 생각지 못하고 상제님을 받든다고 하는 것이 진리를 모르는 소치인 것이다.
천지의 이치가 1ㆍ6 수(水)에 근원하였기 때문에 선천(先天)의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역리(易理)가 다 수중(水中)에서 표출된 것을 알 수 있으며, 용추를 숯으로 메우고 솥을 놓고 솥 위에 미륵불을 봉안하여 증산(甑山)ㆍ정산(鼎山)의 양산(兩山) 출세를 암시하고 도(道)의 근원을 밝혀 놓은 것이다. (1982. 4. 24)
우리가 상제님 한 분만을 믿는다면 진리는 없다.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이 범인(凡人)으로서 할 수 없고 하느님으로서만 하실 수 있다는, 상제님의 범상치 않음만을 믿는 것 외에 다른 의미는 없기 때문이다.
철부지라는 것은 절후(節侯)를 모른다는 것이고 도를 모른다는 것이다. 도주님 함자에 철(哲) 자가 있지 않으냐? 축(丑)은 12월, 축월(丑月)이다. 이것이 소다. 그래서 소를 도라고 한다. 심우도(尋牛圖)란 소가 가는 길을 찾는다는 말이고 도를 찾는 그림이다. 불교인은 심우도를 수도과정이라고 한다. 닭이 또한 도다. 축시에 울기 때문이다. (1984. 12. 26)
선⋅교감은 소속 임원과 도인들의 신앙심을 바로 세워 심신의 개벽으로 성도(成道)케 교화 육성하는 것이 책무이니, 먼저 종통의 연원을 바로 하고 대순진리회의 종지와 교리에 따라 해원상생의 제세대도(濟世大道)를 성경신(誠敬信)으로써 닦게 하여 도통진경에 이르도록 힘을 다하라.
연원의 종통은 종교의 대동맥(大動脈)이다. 유교는 도통(道統)이라 하고 불교는 법통(法統)이라고 하여 그 계통이 천고(千古)에 뚜렷한데, 대순진리의 종통 연원섭리(淵源攝理)를 모르는 증산계열의 군소종파들은 종통을 혈통에 붙여 미혹(迷惑)과 잡된 모략선전으로 유혹한다고 하니 우리 도인들은 각성 못 하고 있는 일이 없도록 명확하게 일깨워 나가라. (1986. 4. 25)
우리가 종교로서의 면모는 다 갖추었다. 종교의 기본 사업은 구호자선사업, 사회복지, 육영사업이다. 이것이 잘되면 좋은 종교라고 하고, 안 갖추면 욕을 먹는다. 우리는 이런 사업을 불교, 기독교 등의 타 종교보다 더 많이 한다. 잘 아는 사람은 잘한다고 하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니까 욕을 한다. 많은 파란, 역경 속에서 발전했다. 역경이 없이는 스스로 발전이 없다. 어떤 종교라도 역경이 없고 파란곡절이 없이 설 수 없다. (1989. 12. 29)
간단하게 얘기해서 구천상제님께서는 절과 연관해서 강세하셨다. 금산사에 임어하셨다. 불교에서는 결혼을 하면 안 된다. 선지조화(仙之造化), 불지형체(佛之形體), 유지범절(儒之凡節)이라 하지 않았느냐.01
불지형체(佛之形體)이니 불교란 것은 쉽게 얘기해서 형상만 있는 것이지 실체는 없다. 나오지도 않은 뱃속의 태아다. 그래서 하는 법이 태아가 앉는 태좌법이다. 태 속에 든 어린애다. 석가불은 어린애이니 미성(未成)이다. 그러니까 결혼이 없다. 미성이 무슨 결혼을 하느냐. 어린애니 머리를 박박 깎고 앉아있다. 미륵불은 갓 쓰고 서 있는 어른이다. 어른이 된다고 하면 근본은 어린애서부터 어른이 되는 것이다. 이게 진리이고 원칙이다. 처음부터 어른이 될 수는 없다.
석가불은 삼천 년 운이고, 미륵불은 오만 년 운이다. 작은 것이 먼저 나오고 긴 것이 나중에 나오는 것이 순리다. 앞으로는 미륵불 운이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미륵불로 오신 것이다. 불교가 있으므로 해서 우리의 법이 나올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석가모니를 봉안한 것이다. 아무나 만들면 되는 줄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다! (1991. 2. 12)
해원상생이란 사랑인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쉽게 말해 아무 원망이 없고 미운 게 없는 그것이 해원상생이다. 해원상생을 생활해나가려면 이해해야 한다. 이해 없이는 안 된다. 이해가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말로만 말고 해원상생을 몸으로 실천해 생활해나가는 것, 그것이 수도다. 미운 게 없고 원망이 없으면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어린애를 길러 나가는 그런 것이다. 밉지가 않고 귀찮지가 않고 원망스러운 게 없다. 밉고 귀찮으면 못 기른다. 이해 없이는 안 된다. 이해해야 한다. (1991. 4. 20)
상제님께서 누가 나를 때리거든 그 사람 손을 어루만져 주라고 하셨다. 기독교에서도 그런 얘기를 한다. 모르니까 그렇지, 안다면 가해자에게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내가 전생에 누군가를 때렸던 것이 척신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붙어서 복수하는 것이다. 받으면 풀린다. 그 사람한테 와서 풀리는 것이다.
무엇을 도적맞았을 때 괘씸하고 미울 것이다. 그러나 전생에 누구한테 물건을 훔친 적이 있고 그게 지금 나타난 것이다. 그 도적이 한 게 아니다. 척신이 그 사람한테 와서 갚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가! 고마워하면 풀린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이해 못 할 게 없다.
척은 받아야 한다. 받으면 풀린다. <전경>에도 있다. 상제님께서 일본 옷을 입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글방에 다니실 때 친구가 있었는데 싸워서 죽어 척이 되었고, 상제님이 일본 옷을 제일 싫어하니 일본 옷을 입으라고 해서 입었다 하셨다.02 우리는 척을 다 풀어야 한다. 전경에 화복(禍福)이라 했다.03 화를 당하면 복이 온다. (1991. 5. 14)
상제님이 하느님이신데 불교, 기독교에 비할 바가 아니다. (1991. 9. 28)
어느 종교나 화평⋅세계평화를 갈망한다. 기독교는 세계평화를 주장하지만 힘이 있는 나라, 미국 등 선진국 위주다. 내가 생각할 때 어떤 종교라도 세계평화를 이룰 수 없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 세계 모두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데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 가지고는 안 된다. 우리의 해원상생이 아니면 평화를 이룰 수가 없다. 남을 원망하지 않고 서로 없으면 못 산다는 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이것을 말로만 하면 안 되고 실천해야 한다. (1991. 9. 28)
복희 선천은 목덕(木德)으로 왕이 되었고 3⋅8 목(木) 봄 절후이며 목신사명(木神司命)이었다. 문왕은 여름 절후이고 2⋅7 화(火), 화신사명(火神司命)이다. 우리는 금신사명(金神司命)이다. 금(金)은 4⋅9, 서쪽이고 가을이며, 금신(金神)은 상제님을 말하며, 그래서 상제님께서 미륵금불에 오셨다. 불교에서 찾는 미륵은 상제님을 말한다. 이것을 진리라고 한다.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이해시킬 줄 알아야 한다. (1992. 4. 9)
불교도 (동국대학교) 승가과를 나오면 중이 될 수 있고, 기독교는 신학대학을 나오면 목사가 될 수 있지만, 우리하고는 다르다. 다른 종교는 인물 본위로 한다. 우리는 인물 본위가 아니다. 완전히 다르다. (1992. 4. 9)
기독교에서는 불로 심판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신명 심판이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야 한다. 첫째가 속이지 않는 것이다. 속이면 안 된다. 모르겠지 하겠지만, 통한다면 과거⋅현재⋅미래가 다 훤한데 못 속인다. 거울같이 다 들여다본다. 속일 수가 없다. 그러니 참 잘해야 한다. (1993. 4. 27)
기독교는 사랑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서로 존경하라는 것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해야 한다. 도인뿐만이 아니다. 밖의 사회 사람이라도 존경해야 한다. 밖의 사람이건 안의 사람이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에 빠지면 건져주고 해야 한다. 해원상생은 서로가 아무 원망이 없이 서로 존경해 나가는 것이다. (1993. 4. 27)
우리 성금의 거의 95%가 사회를 위해 쓰인다. 사회에서 알면 다 놀랜다. 다 칭찬한다. 남 말할 것은 아니지만 다른 데는 안 이렇다. 자기네들에게 다 들어간다. 불교도 성금을 자기네들이 먹지 사회봉사가 없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우리같이 하는 데가 어디 있느냐? 그러니 흠 잡힐 데가 없다. 떳떳하게 해라. (1993. 8 14)
인망에 올라야 신망에 오르고, 사회에서도 덕망 있는 사람이 대우를 받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한다. 대순진리회 사람은 배울 게 있더라고 한다면, 포덕은 절로 되고 그것이 덕화 선양이다. <전경>에 유도는 72명, 불도는 500명이라고 했지만,04 우리는 자리가 남는다. 불교, 유교는 제한이 있지만 우리는 제한이 없다. 다 쓴다. (1993. 11. 4)
기독교는 종말론이다. 그것은 구원을 받자는 것, 생명을 건지자는 것인데, 우리는 그게 아니고 인륜도덕 등 모든 것이 끊어졌으니, 그것을 찾아 창생을 살리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대다. 말세란 근본을 지켜야 하는데 지키지 못하니 모든 것이 끊긴 것이다. 우리는 남을 살리자는 것이지, 내가 구원을 받으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포덕천하로써 세상을 구하고 민생, 창생을 건져내자는 것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삼강오륜이 완전히 끊기다시피 했으니 우리는 그것을 바로 찾자는 것이다. 세상이 멸망되는 것에서 구원받으려는 게 아니고 우리가 살리자는 것이다. (1994. 3. 24)
기독교에서는 병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는다. 우리는 상제님의 공사를 받드는 것이다. (1994. 3. 24)
우리 종단은 구천상제님을 모신다. 신들은 다 안다. 신들이 앞으로 그대로 내버려두면 다 없어지겠다 싶어서 구천에 호소한 것이고, 상제님께서 이를 들으시고 아셔서 ‘내가 직접 내려가서 천하창생을 건져야겠다.’ 하셔서 인간으로 강세하신 것이다. 39년 동안 앞으로의 오만 년 공사를 다 보셨다. 전부가 상극에 매여 있어서 원 맺힌 것부터 풀어야겠다 하시고 해원상생의 대도를 여셨다. 해원 없이 상생이 있을 수 없고 상생 없이 해원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해원에 바탕을 두고 오만 년 동안의 공사를 보셨다. 인세에 오셔서 40년간 다하시고 올라가셨다. 다 알기가 어렵다. 통하지 않고는 모른다. 오만 년 공사를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시는데, 선운(仙運)이다. 불도, 유도, 선도라고 하지만 그것 갖고는 안 된다. 불도도 유도도 부패했다. 아주 새로운 것으로 앞으로 운을 터놓으셨다. 5만 년 극락 운수를 정하신 것이다.
앞으로 오만 년 극락은 한없이 즐겁다는 것이다. 나날이 새롭고 즐거운 것이다. 오만 년을 지내도 새롭고 즐거운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내가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못 해먹고 못 해 입는 것이 사람이다. 그때는 못 먹고 못 입을 일이 없다. 아주 어려운 사람이 떨어진 옷을 빨아서 입을 때, 있는 사람이 옷을 새로 해 입는 것보다 그 맛이 더 새롭고 기분이 좋은데, 그런 마음이 오만 년을 간다는 것이다. 오만 년 동안 늘 새롭게 나간다고 그런다. 그래서 극락이라고 한다. (1994. 3. 24)
상제님의 덕화를 한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무엇보다도 그냥 믿으라고 해선 안 된다. 대순진리회 도인은 본받을 것이 많고 모든 것이 훌륭하다고 대한민국 사람이 모두 그렇게 인식한다면, 자연히 따르게 되고 그것을 포덕이라고 하는 것이다. 세계가 다 믿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평이 좋아지면 그것이 포덕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어디에 뒤지지 않겠다는 정신이 있어야 하듯, 우리는 그래야 한다. (1995.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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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공사 3장 39절 참조.
02 행록 4장 54절 참조.
03 교법 1장 19절 참조.
04 교법 1장 34절 : 또 상제께서 말씀을 계속하시기를 “공자(孔子)는 72명만 통예시켰고 석가는 500명을 통케 하였으나 도통을 얻지 못한 자는 다 원을 품었도다. 나는 마음을 닦은 바에 따라 누구에게나 마음을 밝혀 주리니 상재는 7일이요, 중재는 14일이요, 하재는 21일이면 각기 성도하리니 상등은 만사를 임의로 행하게 되고 중등은 용사에 제한이 있고 하등은 알기만 하고 용사를 뜻대로 못하므로 모든 일을 행하지 못하느니라.” 하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