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대는 상제님을 모신 곳이다. 비영대(非靈臺)면 불가근(不可近)이다. 영대가 하나이지 둘이 아니라는 말은 영대가 여기저기 다른 종교에도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 대순에서만 영대라는 말을 쓴다. 다른 데는 없다. 혹 다른 곳에 영대라고 쓰더라도 그것은 아니다. ‘하나’라는 것은 우리 하나를 말하는 것이다. 여주, 제주에 영대를 모시고 나서 우리 종단이 얼마나 발전을 했는가? 잘들 알아두어야 한다.
제주도에 노형동 주변은 다 되는데 아무래도 멀면 오기 어려우니 서귀포에 올해 내로 도장을 하나 더 지으려고 그런다. 시내는 아니고 부근인데 넓다. 지금 제주도에서 연수를 하고 있다. 제주도에 수련도장을 지어서 홍보 효과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한 번은 제주도에 가 본다. 그러니 거기에 영대가 있어야 한다. 갔다 온 사람은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원래 좁은 지역이 되어서 그렇다. 그 전에 설악산에 도장을 지으려고 했지만 잘 안 된 것은 제주도가 되려고 안 된 것이다. 방면에서도 회관을 짓고 나면 발전이 더 되었으면 되었지 안 되지 않는다.
92년도에는 도인 호수가 100만 호가 훨씬 넘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는 51만 호였는데 지금은 74만여 호다. 1년 동안 23만 호가 늘었다. 금년에는 숫자가 많으니까 더 는다. 여름하고 요즘하고 도인 느는 것이 다르다. 올해에 100만 호가 넘어간다. 이것이 바로 상제님의 덕화를 온 세계로 선양하는 것이다. 그리되면 대한민국 사람 열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도인이 될 것이다. 앞으로 잘해 나가면 막 미어져 들어올 것이다.
그러자면 상제님의 해원상생을 지켜나가야 한다. 안 믿는 이웃하고도 해원상생을 해야 한다. 상대방이 설령 나에게 안 좋은 것을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잘 이해하고 미워하지 말고 잘해 나가면 이것이 포덕, 즉 상제님의 덕화를 펴나가는 것이며 우리의 진리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밖의 사람하고도 그렇게 하려면 도인끼리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맞고 안 맞을 게 뭐가 있는가? 우리는 전부터 친척도 아니고, 이웃으로 알던 것도 아니고, 좋은 도를 인연으로 해서 만난 것이다. 서로 아주 다정하게 하고 그래야 한다. 도인들이라 해도 서로 간에 항상 척을 사면 안 된다. “무척 잘 산다.”는 말도 있지 않으냐? 척이 없어야 잘 산다. 척을 사게 되면 도를 믿는 데도 그렇고 나중에 운수를 받는 데도 큰 장애물이 된다. 서로 아끼고 이해하고 도우면서 믿어 나아가고 그래야 한다. 밖의 사람들이 도인을 안 좋게 얘기하더라도 이해해주고 감싸고 나가면 그게 다 내 모든 복을 쌓는 것이고, 운수를 받는 것도 거기에 있다. 어지간하면 주변을 감싸고 나가야 한다. 감싸 나가면 식구도 늘어나고 믿지 말래도 잘 되어 나갈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절대로 화목⋅단결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종단 전체도 절대 화목⋅단결해야 한다. 단체이니 하나로 묶여야 한다. 혼자되면 안 된다. 낙오되는 것이다. 도를 같이 믿고 나가는 도인들끼리라도 괜히 상대방이 나를 헐뜯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면 그것을 그대로 갚을 것이 아니라 ‘내가 무슨 잘못이 있는가 보다. 전생에라도 그럴 만한 게 있나 보다.’ 하고 이해해 나가면서 포용하면 다 풀어진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