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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月誠)에 대한 훈시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024-08-28 (수) 08:42 조회 : 145

월성(月誠)에 대한 훈시


우리 도의 입도인은 월 1회 성금을 헌납하는데, 자기의 성의에 따라 자진(自進)하도록 할 뿐, 강요는 일체 못하도록 제도화한 것은 작금의 일이 아니다. 다액(多額) 요구란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수도란 금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인도(人道) 정신을 회복하는 데 있다. “있는 사람의 황소보다 없는 사람의 장닭이 크다.”는 취지가 󰡔전경󰡕에 있음은 도의 진리가 돈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요, 정성심(精誠心)에 있음을 깨우쳐주심이다. 임원들은 나의 지시를 올바로 이행하여서 물의의 대상이 되어서는 절대로 아니 될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1984. 4. 9)

수도도 마음에 있어야 한다. 성금은 마음의 헌성(獻誠)인데, 그달에 못 내도 모셔만 놓아도 그것은 정성이다. 혹 부득이한 가정 형편에 의하여 격월(隔月)이 생겼더라도 임원들이 변함없이 다음 성을 더 반갑게 맞아들이면 임원과의 신의가 더욱 두터워지리니, 누가 도를 비방하고 포한(抱恨)하겠는가? (1984. 4. 30)

성(誠) 자체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의 형이상(形而上)의 공덕이요, 인간의 성(誠)은 형이하(形而下)의 유기유정(有機有情)이기에, 반드시 소중히 여기는 물질로써 성심(誠心)을 표현해야 하지만 그 다과(多寡)를 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도를 믿고 닦는 사람은 유무(有無)를 막론하고 성금을 지중히 받들고, 임원들은 성금을 받는 즉시 영대(靈臺)에 고하는 뜻을 신입 도인이 되었을 때부터 깨우쳐 주어야 한다. 성금이 개인에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은 마치 생명의 원동력인 호흡과 같은 것이다. 예부터 지성감천(至誠感天)이라 하였으니 신앙의 목적을 달성하는 소원성취의 열매를 맺어주는 힘이 성(誠)으로써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불망(銘心不忘)하여 나가기 바란다. (1985. 7. 3)

내가 입도할 때 먼저 성금부터 올리고 입도의식(入道儀式)은 여러 달 뒤에 행한 것은 도의 진리를 확연히 깨닫기 위함이었다. (1985. 8. 7)

본도의 조직기구는 각 부서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임원이 선정된 독립기구이니 임무에 충실을 다함은 물론, 그 반면 임무에 무능할 때에는 자책할 줄 알아야 한다. 파견 교감은 나의 특사(特使)이니 해당 방면은 임무 수행에 적극 보좌하여 월성수봉(月誠受奉) 때에는 각 방면이 다 같이 교감 입회하에 행하라. 조직기구의 각 부서는 앞으로 직무수행에 있어 성불성(誠不誠)의 여부를 엄격하게 다스려 나갈 것임을 명심하여 힘써 직무를 다하기 바라는 바이다. (1985. 8. 29)

8세부터는 성금을 모시는 도인이다. 어린애도 다 부모 따라 운수를 받는다. 상제님 말씀에 목석이라도 기운만 붙이면 받는다고 하셨는데, 어린애라도 사람이니 먼저가 아니겠는가. 가령 부인이 잘 믿는데 남편이 반대만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부인의 운수와 같이 받는다. 운수가 달라서 남남이 된다고 하면 도덕이 될 수 없다. 자포자기하지 말고 따라만 가면 다 운수를 받는다. (1988. 10. 27)

월성은 어떻게 모시고 있는가? 본부성 3일 전에는 선무들이 다 모여서 선사 성을 모시고, 그다음에 상급 임원 입회하에 선사들이 선감에게 성을 모시도록 하라. 선사가 성금명세서를 작성하고 선감에게 가져가 정리하도록 통일한다. 공제금의 용도는 지방의 유지비와 사업비로 하되, 임원들에게 여비로 지급할 수도 있다. (1989. 1. 12)

우리에게 그런 성금은 필요 없다. 우리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대도(大道)에 필요한 돈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을 해서라도, 도둑질을 해서라도 모아야 한다는 말은 절대 있을 수가 없다. 그건 옛날 무식한 포감들이나 했던 말이다. 이러한 말들은 같은 분부를 모시고도 무식한 사람들이 그 뜻을 잘못 판단해서 말을 잘못 내린 것이다. 좋은 말은 내려가지 않아도 안 좋은 말은 내려가기 마련이다. 세상에서 아주 더러운 것이 돈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옳은 정성으로 잘 쓰는 것이다. (1989. 4. 12)

월성(月誠) 명세서를 2부 작성하여 1부는 본부에 올리고 1부는 방면에서 보관하며, 영수증이나 성금헌납표는 없애고 월성 명세서로 대체하라고 했지 않어! 10만 원까지는 성금이고 그 이상은 표성금(表誠金)이라고 하도록 해 왔는데 앞으로는 명목을 붙이지 말고 전부 성금(誠金)이라고 하라. 표성금이라 하면 돈을 많이 받아내려고 하는 것 같은 인식을 줄 우려가 있다. 따로 표성금이라고 해서 영수증 떼어줄 필요가 없고, 명세서에 기록만 하라. (1989. 5. 30)

도주님 재세 시에는 삼일성(三日誠)이 있었다. 삼일성이란 초하룻날, 열하룻날, 스무하룻날, 일해서 버는 것을 성금으로 모시는 것이다. 절미성금(節米誠金)이란 것도 있었다. 끼니때마다 밥을 먹는 데서 쌀을 한 숟가락씩 떠놨다가 모으는 것이다. 정성이다. 어려웠던 그때 한 숟가락 쌀은 굉장한 정성이었다. 돈이 아니라 정성이다. 우리의 일은 모두 정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1989. 5. 30)

사람 숫자만 갖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공로이다. 나는 이것을 도주님께 배웠다. 무엇을 가지고 보느냐 하면 성금을 가지고 본다. 돈 가지고 보냐 하겠지만 그런 게 아니다. 기왓장 하나라도 더 얹은 것을 봐야 한다. 도주님께서는 재세 시에 성금 많고 적은 것을 가지고 따져서 하셨다. 호수 가지고 한다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라. 첫째는 성금 가지고 보는 것이다. 재세 시에 그렇게 하셨다. 또 원칙이 그런 것 아닌가! 성금이란 것은 한 달 동안의 자기 믿음이고, 정성의 표시이다. (1990. 2. 3)

각 부장 자리는 다르다. 제일 먼저 보는 것은 성(誠) 성적이다. 거기에 박력이나 통솔력이라든지 이런 게 다 나온다. 도주님께서도 재세 시에 1년 성적을 볼 때는 성금의 성적을 보셨다. 인원수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다. 성금을 먼저 보는 것은 활동을 했어도 더 했고 교화를 했어도 더 했고 임원 받드는 것도 더 받들었으니까 더 성심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과로 나온 것이다. (1990. 2. 5)

옛날에는 영대에다 현금을 갖다 놓고 배례를 드렸다. 앞으로는 지방 임원들 대표가 통장 계좌를 만들고, 방면 임원들은 모두 그 통장에 부쳐서 방면성을 모시고, 본부성 때는 수표로 찾아 직접 가져와서 배례를 드려라. 본부 성금은 은행 입금으로 할 수 없다. 현금이나 수표로 올릴 수 있도록 하라. 수표가 편리하다.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다. (1990. 5. 17)

종교에는 성금이란 게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십일조(十一租)라는 게 있는데, 10만 원 벌어서 1만 원 내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떠들어도 문제가 안 된다. 국가 세금도 1/10, 기독교도 십일조인데, 1인당 1만 원만 뗀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냐. 그렇게 해서 국가도 교회도 운영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꼭 그렇게 받으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정신을 가져야 한다. 옛날 도주님 재세 시에는 삼일성(三日誠)이 있었다. 3일, 13일, 23일에 번 것은 모두 다 성으로 모시는 것이었는데, 그 이상은 ‘특’이라 했다. 그것을 꼭 지켰다. 재세 시에는 꼭 했었다.

... 성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는 것이다. 정성대로 하면 그것이 성이다. 한 달에 100만 원 버는 사람이 천 원, 오천 원 내는 것은 성금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강요하면 안 된다. 성금은 자신이 도를 믿어나가는 표시이다.

...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게 있지 않으냐. 혼자서 하면 종단을 욕 얻어먹게 하고 힘들고 그런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하는 게 작아도 크고, 혼자 하면 큰 액수도 풀면 작아진다. (1990. 6. 17)

성금, 월성금이란 것은 한 달 우리의 정성의 표시이지 다른 게 아니다. 도주님 재세 시에는 삼일성(三日誠)이 있었다. 한 달에 3일을 정성의 날로 정해서 삼일성이었다. 초하루, 11일, 21일 또는 초사흗날, 13일, 23일, 또는 5일, 15일, 25일, 이렇게 한 달에 사흘이었다. 열흘씩 정성을 표시하는 것이다. 꼭 그렇게 했다. 지금은 그렇게 못 지킨다고 하더라도 그런 정성은 알고 해나가야 한다. 기독교도 주일마다 예배하고 십일조(十一條)를 하는데 우리의 삼일성이나 기독교의 십일조나 수입의 1할로 똑같은 것이다. (1992. 11. 17)

돈 문제가 없으려면 성금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성금은 도가 좋고 옳기 때문에 진심에서 우러나와 자진해서 내는 것이다. 교화를 잘해서 세계 평화의 근본원리인 해원상생의 법리를 잘 이해시키고 우리의 목적인 도통과 운수를 잘 이해시킨다면 성금을 더욱 정성스럽게 모실 것이다. 월성금과 표성금 두 가지가 있다. 월성금은 다달이 자기 형편에 맞춰 내는 것이다. 10만 원까지는 성금이지만, 그 이상이 되면 표성금이 된다. 표성금은 어떤 일이 있을 때 특별하게 많이 내는 것이고, 표성금에 있어서 본부에 대해서는 300만 원, 방면에 대해서는 200만 원으로 제한했다. 그것도 두 번 이상은 안 되고 한 번만 된다. 이것만 지켜주면 된다. 문제없다.

...다시 말하지만 성금은 자진성금(自進誠金)이어야 한다. 스스로 우러나와서 올리는 것이고 아까워하지 않고 내는 것이다. 성금을 적게 낸다고 ‘이것을 성금이라고 내요?’, ‘이것을 돈이라고 가져왔어?’ 하면 그것은 강요가 된다. 성금은 강요로 하는 게 아니다. 무슨 돈을 많이 낸다고 되는 게 아니다. 진리를 교화하여 도가 좋다는 것을, 도가 틀림이 없다는 것을 알면 성금을 내지 말라고 해도 낸다. 덮어놓고 돈만 내면 좋다고 하는 것은 강요하는 것이지 성금이 아니다. 교화를 잘해서 성금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여 성금을 내더라도 성금이 무엇인지 잘 알도록 해주고 올바른 도인을 만들어 운수를 받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고 책무다.

...10만 원까지가 월성이다. 전에 삼일성(三日誠)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 기독교는 십일조라 한다. 그거나 우리 삼일성이나 같은 것이다. 정신은 삼일성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인들도 구원받기 위해 십일조를 교회에 내지 않느냐? 10만 원까지이니 삼일성이면 열흘에 33,000원이다. 10만 원까지는 월성금이고, 그 이상은 표성금이다. 본부에 올리는 표성금은 300만 원 이상은 하지 말라. 방면에서 뭐하는 데 있어서는 200만 원까지다. 한 집에 300만 원 내었다고 망하는 사람 없다. 방면에서 회관 지을 때 자기 집 짓는 것이므로 관계없다.

다음 달 성을 벌써 받는 경우가 있지 않으냐? 성금을 낸 지 일주일 되었는데, 또 성금 받으러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것은 성금이 아니다. 그러지 마라. 성금은 참된 도인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성금 모시러 간다는데, 수반이 모셔 가지고 오는 것이다. 성금 받으러 왔다고 성금 내라고 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앞으로는 바르게 해야 한다. 성금 날짜만 정해주고 스스로 모시게 해야 하는 것이지, 받으러 나가거나 적다느니 뭐니 하지 마라. 도가 옳고 좋다는 것을 틀림없이 가르치면 성금을 내지 말라고 해도 낸다. 성금이 바로 도장에 들어오면 하등 문제가 없다. 󰡔도헌󰡕에 보면 종단은 도인의 성금으로 유지한다고 되어 있고 재단법인 정관에도 운영을 도인의 성금으로 해나간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정하는 대로 그것만 지켜주면 아무 일 없다.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제일 주의해야 할 점이 그것이다.

한 집에서 세 명이 따로따로 성을 냈다고 하더라도 한 식구일 땐 한 사람으로 합쳐서 내도록 하라. 한 식구가 5명, 10명이라도 1호로 해야 한다. 실제로 성을 모신다면 네 식구가 한 명에 5,000원씩 해서 20,000원을 한 사람 이름으로 내면 된다. 원래는 삼일성(三日誠), 그 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그 정신을 가지고 나간다는 것은 성도 그렇게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삼일성이란 한 달에 3일 번 것을 성으로 모신다 해서 나온 말이다. (1993. 8. 14)

우리 성금의 거의 95%가 사회를 위해 쓰인다. 사회에서 알면 다 놀랜다. 다 칭찬한다. 남 말할 것은 아니지만 다른 데는 안 이렇다. 자기네들에게 다 들어간다. 불교도 성금을 자기네들이 먹지 사회봉사가 없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우리같이 하는 데가 어디 있느냐? 그러니 흠 잡힐 데가 없다. 떳떳하게 해라. (1993. 8. 14)

성금이란 자신의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돈이라는 것은 마음의 표시이고, 정성이라는 것도 마음의 표시이다. 매사에 있어 너무 과해도 안 되고 부족해도 안 된다. 과부족 다 안 된다. 못쓴다. 과(過)란 자기 힘에 부치는데 하는 것으로 넘쳐도 잘 못 쓰고, 부족이란 넉넉한데 만 원을 모셔도 아무것도 아닌데 천 원을 내는 것으로 정성이 아니다. 못쓴다. 성은 진실하게 과부족이 없이 하는 것이다. 단 100원이라도 몇십만 원보다 더 큰 게 있다.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돈의 액수로 정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강요는 절대로 안 된다. 성금이란 자기 스스로의 진실⋅진심에서 나와서 하는 것이다. 도인을 만들려면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도인을 만들려면 다른 게 아니다. 도가 좋고 옳다는 것을 자기가 확신한다면 시키지 않아도 한다. 도를 알고 확신한다면, 얼마를 해도 아깝지가 않은 것이고, 모르면 단 10원을 해도 아까운 것이다.

월성금은 10만 원 이하로 한다. 삼일성이면 개인당 4∼5만 원 이상이 되고 가족 수대로 하면 이보다 더 많지만, 10만 원 이상은 성이든 뭐든 없애라. 한 호당 10만 원 이상 하지 마라. 이제는 한 집에 10만 원 이상 안 해도 된다. 꼭 10만 원에 맞추라는 것이 아니다. 자기네 형편에 따라서 벅차지 않게 하라. 몇천 원이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과부족이 없도록 하라. 너무 과해도 안 되고 너무 부족해도 잘못이다. 완전한 도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1,000원을 내도 제대로 한다. 앞으로 있어서 월성만 잘 지키면 아무 문제 없다. 타종교에서는 머릿수로 한다. 식구 수를 다 친다.

성금만 가지고도 하려는 것 다 해나간다. 고등학교를 분당과 일산에 세워 내년에 학생을 받을 것이다. 원래는 양로원을 해보려고 계획했는데, 그게 어렵다. 잘 안 되었다. 막상 알아보니 사회 양로원 법이 까다롭다. 3,000평으로 지으려는데, 5,000평을 해도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돈이란 써야 한다. 돈이 필요 없으니 성금을 안 받았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도인이 안 된다. 돈을 안 받으면 도인이 안 만들어진다. 쓸 데가 없어서 돈을 갖다 버리는 일이 있어도 성금을 받아야 한다. 어쨌든 모인 그 돈을 써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밖으로 도를 빛내야 한다. 그래야만 도세가 확장된다. 그래서 학교를 많이 짓기로 결정했다. (1993. 8. 14)

많고 적고 간에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성의다. 앞으로는 일체 그저 돈만 많이 내면 된다는 식의 생각, 인식을 가지면 안 된다. 돈이란 것이 그렇다. 가령 친척, 친구 그 집이 잘살아서 넉넉한데, 음식을 낼 때 죽을 쑤어 준다면 그것은 섭섭한 것이다. 반면에 없는 사람이 반갑다고 음식을 잘 차려 내오면 그 음식은 목에 잘 넘어가지 않는다.

성금도 마찬가지다. 10만 원 내도 될 사람이 만 원 낸다면 정성이 아니고, 없는 사람은 단돈 10원을 내도 그것이 몇억, 몇백억보다 큰 것이다. 있는 사람이 몇백만 원을 내도 없는 사람 10원보다 못한 경우가 있다. 정성은 그와 같은 것이다. 부자로 몇백, 몇천만 원 내도 좋은 사람이 정해져 있는 10만 원을 내는 것은 괜찮다. 정해진 것이니 그렇다. 성금은 10만 원 이하다.

... 도인을 만드는 데, 필요가 있건 없건 간에 돈을 받기는 받아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도인이 안 된다. 그것이 정성, 믿음의 표시다. 무물(無物)이면 불성(不誠)이다. 성금이 없으면 도인이 안 된다. 올바른 성금을 내게 하고, 올바르게 받아서, 올바르게 쓰면 된다. 그래서 이번에 다른 것 올리는 것을 폐지한다. ‘잘했다, 못했다’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무실에서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닌 줄은 안다. 잘못하면 종단에서 피해를 보게 된다. 우리 모든 것을 신명의 일로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정당하게 성금이 들어오니 정당하게 쓰면 된다. 식량이 부족하면 사면 되고, 고추가 필요하면 사면 된다. 만약에 도인이 채소를 많이 심었다고 하면 그것을 올리고 싶으면 팔아서 성금으로 모셔라. 그 사람의 정성을 막는 것이 아니다. 성으로 통일하라. 그것이 법으로 정해졌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 그저 우리는 도인을 만들어야 한다. 도인을 만들려면 무물이면 불성이다. 그게 없으면 정성이 아니라 한다. 참다운 도인을 만들어야 하는데 자기가 자발적으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기 형편에 맞게 성금을 내게 해야 한다. 성금이라는 것은 정성의 표시이고 성금이 아니면 정성을 모르고 정성이 나와지지도 않는다. 성금이 아니고서는 도에 정성을 다할 수 없는 것이다. 돈이라는 것은 중하다 하면 자기 생명보다 중요하고 더럽다면 똥보다 더러운 것이다. 도가 참말로 옳고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면 돈이 아깝지 않고, 그걸 모르면 단 10원도 아까운 것이다. 성금으로 다 나타난다. 똑같다. 기독교에도 십일조가 있고 우리는 삼일성이 있다. 성금이 아니면 도인이 될 수 없고 도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다. 그것을 가르쳐주어라. 마음을 흐리게 해서 돈을 뺏는 것은 사기다. 이러쿵저러쿵 홀려서 돈을 빼려고 하지 말라. (1993. 10. 3)

이 외에 성금을 다른 데 쓸 데가 없다. 그렇다고 성금을 없앨 수도 없다. 그럼 도인을 못 만들고 아무것도 아니다. 저번에 도장에 올리는 모든 것을 일체 안 받는다고 했는데, 치성물 만큼은 안 되겠다. 그렇게 못하겠다. 그것 떨어지면 다 안 되는 것이다. 수도가 성경신이다. 성은 내 마음으로, 경은 내 몸으로, 신은 내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 치성드리는데, 정성 올리는 것을 금하면 상제님에 대한 정성을 끊는 것이니 그대로 두라고 했다. 아무리 잘못이 있더라도 그것까지 막으면 너희들 도를 믿지 말라는 얘기가 된다. 그것은 내가 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치성물은 받으라고 했다. (1993. 11. 4)

성날은 도중 행사로 우리로선 월중 행사로 대행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치성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치성만 모시면 되고 성금은 아무나 심부름시켜 사무실에 전해주면 된다. 만약에 성날이 중요하지 않다면 치성이 없는 달에 올 필요가 없다. 왜 다달이 선⋅교감들이 모이겠느냐? 선⋅교감들이 모두 모이는 또 다른 이유, 그것을 알아야 한다.

성(誠)은 일 년에 열두 번이 있다. 도인들의 한 달간 정성이다. 돈, 금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성이 중요하다. 돈은 다만 그 정성의 표시인 것이다. 선⋅교감은 도인을 대표해서 여기에 모이는 것이다. 선⋅교감들이 오백만 도인을 대표해서 정성을 상제님께 올리는 것이다. 도 믿는 정성을 표시한 것이다. 여간 중요한 게 아니다. 임원들이 이것을 모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편이든지 어떠한 방법이든 송금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 (1994. 5. 16)

우리가 정한 법을 잘 지켜야 한다. 돈이 필요 없다. 우리가 돈이 필요한 때는 지나갔다. 실제가 그렇다. 그런데 도인이라면 성금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나중에 공을 이루었다고 해도 받을 게 없다. 성금만은 내야 한다. 10만 원 이하로 성금을 내는 것은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 (1994. 6. 10)

성금을 내고 기도행사를 하는 모든 것은 입도치성을 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입도치성을 했다고 도의 행사에 참석하고, 하지 않았다고 참석 못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상관없다. 하는 사람은 치성부터 올리자고 안 한다. 원래는 입도부터 시키고 후에 치성을 올리는 것이다.

생각해봐!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은 임원들이 중간에서 몽땅 만든 거야!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치성을 올리더라도, 도를 알고 올리는 치성하고 모르고 올리는 치성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도를 알면 정성이 나온다. 도를 모르고 올리면 뭔지 모른다. 치성이라 할 수 없다. 도를 모르고 치성을 드리면 안 된다. 백날을 드려도 안 된다. 내려오면서 임원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1994.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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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체계에 대한 훈시(4) 운영자 08-23 128 0
115  체계에 대한 훈시(3) 운영자 08-22 120 0
114  체계에 대한 훈시(2) 운영자 08-21 138 0
113  체계에 대한 훈시(1) 운영자 08-20 170 0
112  신조(信條) - 삼요체(三要諦) 운영자 08-19 146 0
111  신조(信條) - 사강령(四綱領) 운영자 08-18 130 0
110  인도(人道)는 ‘예(禮)’를 체(體)로 삼는다 운영자 08-17 118 0
109  체계 확립이 잘되어야 한다 운영자 08-16 108 0
108  화합과 화목 운영자 08-15 118 0
107  척을 푸는 것이 수도다 운영자 08-13 133 0
106  복을 받자면 화부터 받아야 한다 운영자 08-12 146 0
105  자구다복(自求多福)의 도인 운영자 08-11 156 0
104  솔선수범, 가정화목, 이웃화합을 꼭 실천하고 생활화하도록 하라 운영자 08-10 106 0
103  월성 날은 월 중 대행사 운영자 08-09 118 0
102  법도대로 일 처리를 해야 한다 운영자 08-08 13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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