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靈)
도통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서너 살 된 어린애들도 자기 엄마가 어디 시장에 가면
무엇을 사서 갖다 줄 것이라 생각한다.
영(靈)은 안다.
그것을 영감, 직감이라고 하는 것이다. (1991. 5. 14)
자기도 모르게 생각나는 것이다. 다 안다.
영은 다 아는 것이다.
영이 통해서 밝아지면 그게 도통이다.
누구도 없다고 말 못 한다.
사리를 판단할 줄 아는 애들이 15살 정도인데,
그 애들도 영감, 직감이 있다는 건 다 안다.
영이 밝아지면 도통이다.
밝아진다는 것은 정신통일이고,
정신통일이 곧 발달이다.
영(靈)이 무엇이냐 하면 곧 신(神)이다.
신이 통하면 도통이다. (1991. 5. 14)
영(靈)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신(神)이다.
도통이란 신을 통하는 것이다.
영이 발달이 된다는 것은 도통을 받을 수 있게
우리의 마음과 몸이 아주 맑아져야 된다는 것이다.
맑아지는 게 우리의 수도이다.
어떻게 닦느냐에 달려있는 것일 뿐, 도통은 꼭 있다.
도를 통하는 것, 즉 도통은 틀림없이 있다.
심신이 맑아지면 통한다.
통한다는 것은 자연의 진리에 통한다는 것이고,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한 것이다.
영이 바로 신이니까 밝아지면 통한다. (1991. 5. 14)
우리는 잠을 안 자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 전에는 도장에 들어오면 잠을 못 자게 했다.
치성 때도 자면 안 된다.
잠이란 것은 필요가 없고 쓸모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공부는 잠 안 자는 공부다.
공부는 10월에 시작하면 그 이듬해 3, 4월이면 끝난다.
반년이면 된다. 밖의 사람들은 알 수 없다.
공부는 자꾸 해야 한다.
해 본 사람들은 자주 하려고 한다. (1991. 5. 14)
우린 다른 게 아니다.
지금은 우리한테 있는 영(靈)이
욕심에 다 차 있어서 모르는데,
그게 다 벗겨지고 깨끗해지면 그것이 도통이다.
모든 것을 잘해 나가는 것은
모두 남을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해 그러는 것이다. 그것이 없어져야 한다.
그것이 제일 어려운 것이다.
도가 좋다는 것을 알고 도통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나보다 남을 위해야 한다. (1992. 2. 8)
공부를 시켜봤는데 다는 못하더라.
몇 사람을 공부시키고 있는데
왜 내수를 먼저 시키느냐 하면
영(靈)이 맑아서이다.
여자는 수성(水性)을 띄고
남자는 화성(火性)을 띄고 있기 때문에
내수를 먼저 시키는 것이다.
신인상합(神人相合)이 도통이다.
여기에 공부한 사람이 몇 사람 있을 것이다.
많지는 않다.
공부하면 신을 본다.
보면 신명인지 잡신인지 구별해야 한다.
도장에 있는 신명하고 밖에 있는 잡신하고 완전히 다르다.
사람이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사람됨이 좋고 저 사람은 어떻고 하듯이
신도 마찬가지다.
도장에 신명이 있고 저 밖에도 신이 있다.
귀신도 있다.
교회나 절에도 거기 나름대로 신이 있다.
우리 도장의 신명들과 그 신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내가 추측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실제다. 신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확실히 안다.
공부했다고 아는 체하는 것은 허령이다.
밖에서는 정신이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공부 마친 사람을 봐라.
멀쩡하지 않으냐?
얼굴이 아무렇지도 않다.
눈동자를 보면 틀린다.
허령이 들면 눈동자부터 탁해져 하얗게 된다.
이런 것 저런 것보다 진리가 옳고
틀림없다는 것을 알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걸 알면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 몇 사람 큰공부한 사람이 있는데
방면에서는 알 것이다.
공부한 사람이나, 방면 사람이나 기운은 똑같이 받는다.
선⋅교감들이 이런 얘기를 함부로 한다면
선⋅교감의 자격이 없다.
도인들에게 전할 때는 할 소리,
안 할 소리, 구분해서 해야 한다.
도장에서 공부나 수련을 하면
저 지방 구석구석까지 다 기운이 간다고 늘 이야기한다.
공부를 하면 주문소리도 나고 한다.
그 근방에만 가도 기운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부를 하면 우선 몸이 건강해진다.
주문을 하면 혈액 순환이 잘 된다.
소화도 금방 돼서 배가 고프고,
밥도 많이 먹게 되고 소화도 잘되어 몸이 좋아진다.
공부 기운을 받는 데는 멀고 가까운 것이 상관없다.
사수가 시간을 알려주는데,
방안에서 공부하는 사람이나
밖에서 챙기는 사수나 똑같다.
사수도 몸 건강하고 아주 좋다.
곁에 있는 사람이나 먼 데 있는 사람이나 영은 똑같다.
곁에서 기운 받는 것이 똑같다면,
멀리서 기운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저 지방까지도 기운이 똑같이 내려간다.
모른다 하더라도, 저 멀리 있다 하더라도,
도인이면 기운을 똑같이 받는다.
개안(開眼)이라고 하는데 신의 눈이 열린다는 것이다.
즉 신이 보이는 것이다.
신을 보는 눈에 눈이 마주치면 혹 뭐 아프다가도,
안 좋은 상태여도 확 다 풀려버린다.
본래대로 돌아간다.
공부해서 아는 척하는 것은 다 허령이다.
밖의 사람들이 공부해서 받는 신하고
우리가 받는 신하고 전혀 다르다.
공부한 사람은 신을 다 본다.
지금 이곳에서 공부를 마쳤다고 하면
절대 허령에 들지 않는다.
허령이 들래야 들 수가 없다.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보고,
듣고 싶으면 언제든지 듣고, 빠지는 것 없다.
직접 내가 보고 들으니, 허령이 들질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 도의 진리를 이해시키고
도인들이 그것을 확고하게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1992. 3. 18)
걱정하는 마음만 먹어도 신명과 통한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고 하면
신명에서 상제님까지 다 통해진다.
신명과 영(靈)이라는 것은 멀고 가까운 게 없다.
이것은 틀림없다. 믿어도 좋다.
실질적인 참다운 정성이어야지,
꼭 주문을 읽는다고 되는 건 아니다.
외국에 가 있더라도 내가 걱정을 하고 마음만 먹으면
내 영이 거기에 다 간다. (1992. 4. 9)
여기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신이나 신명하고 대화를 하고 호소해서
뭘 알고 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개안(開眼)이 되는 것이다.
개안은 신안(神眼)이 열리는 것을 말한다.
신명에게 뭘 물어보고 호소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신안이 열리면 보는 것이다.
신안은 멀고 가까움이 없다.
막히는 데가 없다.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상처를 보면 된다.
신명에게 호소를 해서 낫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한다고 해서
절대 무슨 병을 고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의통이 신안(神眼)이다.
공부하는 사람이 직접 신안이 열리고
신안에만 마주쳤다 하면 풀린다.
모든 것이 풀려진다.
여기서 공부하고 있는데
멀고 가까움이 없이 다 된다.
영(靈)은 멀고 가까움이 없다. (1992. 6. 26)
유기심유(有其心有) 무기심무(無其心無)이다.
모든 것이 마음에 된다고 하면 되고,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
심령 통일도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다.
정성이란 틈 없이 늘 부족하다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1993. 7. 11)
도인으로서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
마음, 영(靈)이다.
정성이란 도인으로서
마음과 영, 심령(心靈)을 통일하는 것이다.
도가 곧 나요, 내가 바로 도라는 경지에서
마음과 영, 심령을 통일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무소불능(無所不能)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한 몸에 임해 있다.
한 몸에 제일 중요한 것이 마음이다.
전체 몸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인 것이다.
만기(萬機)를 움직이는 것이다.
만기란 크게 말하자면 만 가지의 모든 기관이며,
작게 말하자면 만 가지의 기계를 뜻한다.
내가 나를 이렇게 저렇게 하는,
만 가지의 기거동작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마음은 일신(一身)을 주관해서
모든 것을 통솔⋅이용한다.
정성은 마음으로 하는 것인데,
그 목적은 영을 통하는 것이다.
심령(心靈)을 통일시키는 데 마음을 다해야 한다.
모두가 마음에 있으니 마음이면 다 된다.
마음만 밝아지면 무소불능하게 되는 것이다.
심령을 통일하면 만화도제(萬化度濟)에 이바지할 수 있다.
(1993. 7. 11)
우리는 도통을 목적으로 가는데,
말하자면 의통이다.
우리가 믿어나가는 기본이다.
늘 얘기하지만, 병겁을 피하는 법이다.
상제님께서는 늘 병겁을 두고 말씀하셨고,
이것은 너희가 하라 하셨다.
도통이 다른 게 아니다.
수도해서 정신이 통일되면 자연히 영(靈)이 통해진다.
영이 통해지면 영통이고 그것이 도통이다.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병이다.
천기자동(天機自動)으로
다른 종교에서도 다 병 고친다고 한다.
그것은 큰 것의 그림자라 할 것이다.
천기자동인 것이다.
그런데 시료를 돈에 부친다면
이보다 유치하고 치사한 게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그게 아니다.
우리는 의통이다. (1993. 10. 3)
아직 시험하고 공부 중이다.
아직 문을 열려고 손도 못 잡은 것이다.
손에 닿은 정도다.
<전경>도 보고, 이것저것 다 보면
도통이 다른 게 아니다. 의통이다.
도통문을 열려고 문에 손을 댄 정도다.
그런데 여기다 몇 푼 안 되는 돈 받아서 뭐가 되겠냐.
시료는 이제 문을 열려고 지금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1993. 10. 3)
정신이 통일되면 영이 통하고, 영이 통하면 도통이다.
여기 순감들을 보면 영이 통해지면서 사물을 보면
지저분한 것이 젖혀지고 본래대로 깨끗하게 된다.
이것이 시료다. 우리의 목적이 도통인데, 제일 무섭고
모면하기 어려운 것이 병이다. 병겁이다.
그러나 도에 통하면 된다. 밝게 통해져서 보면 뭐든지
원 상태로 확 돌아선다. 뼈가 썩었다 하더라도 원래대로
돌아가고 피가 탁하다고 하면 쳐다보는 순간 싹
맑아진다. 지금은 모든 것이 시험 기간이고
이런 것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밖의 사람은 이해 못 한다. (1993. 10. 3)
우리 수도는 성경신 삼법언으로 수도의 요체를 삼는다.
또 내 마음과 몸이 안정되어야 한다.
그것 없이는 안 된다. 매사가 다 그렇다.
그래서 안심⋅안신,
이 두 가지를 이율령으로 법을 삼아
대순진리를 닦아 나가면,
그것이 수도가 되는 것이다.
성경신 이것이 굉장한 것이다.
이것만 해도 안 되는 게 없다.
성경신 삼법언으로
우리가 수도하는 데 요체로 삼고,
또 안심⋅안신을 법으로 삼아
대순진리를 닦고 또 닦고,
정성하고 또 정성하면 그것이 수도다.
여기에 영통이 있고, 도통도 여기에 있다.
영통이 도통이지 뭐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수도라는 게 어려운 것이다.
쉬운 게 아니다.
이렇게 해나가면 영(靈)이 통하고
영통(靈通)이 곧 도통(道通)이다.
여러분이 수도가 안 된 게 아니다.
수도가 되고 있다.
수도를 바르게 잘해야 된다.
늘 얘기하잖아?
내수들은 단청 가지고 얘기하고,
외수들은 일하는 것을 가지고 얘기하잖아?
단청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 영이 어느 정도 통했어요.
그러니까 그걸 긋고 그러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그렇게 못한다.
영이 통하면 그것이 도통이다.
여러분이 그것을 아무렇게나 생각하니까 그렇지,
여러분이 어느 정도 통했기 때문에 일이 되는 것이다.
노인들도 자기 정성으로 해보자고 선을 그으니까 똑같다.
단청을 배웠건 안 배웠건 똑같다.
외수들도 마찬가지다.
배운 것이 없어도 누구라도 하라고 하면 다 했다.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다. (1994. 8. 4)
포덕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신 통일(精神通一)이 되어
영(靈)이 맑아져야 합니다.
자나 깨나 항상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도인의 포덕하는 정신입니다. (1995. 4. 20)